선지자적 현실주의의 삶을 실천합니다. | 신동식 | 2025-07-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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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적 현실주의의 삶을 실천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정의할 때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 있다면 공적인 삶에 대한 자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로 모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로 흩어지고 교회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때 교회로 흩어지는 곳이 바로 세상입니다. 그리고 공적 영역입니다. 흩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흩어지고 세상에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교회로 모여 예배합니다. 세상에 흩어져서 공적인 삶을 감당하려면 분명한 자기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론에 따라 살아갑니다. 또는 미디어에 굴북 당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안타까움에 빠져 있는지 모릅니다. 주체적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의존적 생각을 합니다. 의존적 사고에 빠져 있으면 토론은 어렵습니다. 상대에 대한 이해도 힘이 듭니다. 배려는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나와 다르면 모두 적이 되어집니다. 이 모두가 자기 정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정체성의 큰 모습은 세계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성경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 세계관은 거대 담론과 개인 담론을 포함합니다. 거대 담론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반면에 개인 담론은 구원의 관점에서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와 구원의 관점에서 세상과 자신을 주체적으로 바라볼 때 의존적인 자세가 아닌 주체적 자세로 살 수 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모습은 바로 선지자적 현실주의입니다.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세상에 전하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그러기에 매우 날카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비판적인 시각과 책망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행위에 대하여 아주 분명하게 책망을 합니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자세를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세상과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성경적 세계관이 자신이 생각과 삶을 지배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을 향한 외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선지자는 비관적입니다. 구약 성경이 보여주는 선지자의 외침은 심판으로 끝났습니다. 선지자의 소리를 누구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외침대로 나라들이 멸망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지자는 눈물의 사람입니다. 듣지 않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앞을 보지만 사람은 현재만 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늘 현재와 충돌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눈물의 사람이고 멸망의 사실을 보고 있기에 비관적입니다. 그래서 손봉호교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비관적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지나온 현실을 볼 때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좀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바로 현실인식입니다. 현실을 떠나서 이상 속에 살 수 없습니다. 비관적인 내일을 보지만 선지자의 심령으로 살 때 자칫 선지자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비관적 선지자주의에는 개혁과 부흥을 일으키려는 강력한 동기에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반 위에 가져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바로 선지자적 현실주의이니다. 현실의 세계에서 선지자의 사명을 적극적으로 감당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개혁과 부흥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공적인 삶을 감당하는 데에 선지자적 현실주의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선지자적 현실주의자로 살아야 합니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것이 개혁과 부흥을 누리게 합니다. 그럴때 교회로 모이고, 교회로 흩어지고, 교회가 되는 열매가 완성됩니다. 선지자적 현실주의자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열성적으로 살아갑니다. 비관적인 생각에 앞서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실에 입각한 사람입니다.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낙관주의자는 아닙니다. 오직 낙관은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만 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서 피워야 할 꽃은 바로 선지자적 현실주의입니다. 선지자적 현실주의자에게 볼 수 있는 확실한 특징은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는 일에 매진합니다. 현실과 싸우지만, 반드시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손해도 보고, 피해도 보고 일의 성취가 더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변방에서 중심을 깨우는 일에 참여합니다. 여기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자세가 있다면 바로 선지자적 현실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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