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연구(129) - 신명기[15] | 박석화 | 2012-01-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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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 연구 (신명기 9:1-10:5) 신명기 9장 우리가 계속해서 모세의 두 번째 설교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신명기 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게 하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을 실제로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실제적으로 현실을 직면할 때, 우리의 신앙을 체함 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징계였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 이었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훈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8장에서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먹을 것이 쇠하지 않은 것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겪고 난 뒤 삶이 부요하게 되었을 때,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요가 자신으로 이루어졌다는 교만은 패망하게 됩니다. 8장의 결론은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이 없고, 좁을 길을 통하지 않으면 영광의 문에 다다를 수 없듯이, 40년 광야 생활을 통과하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없듯이, 우리의 삶도 십자가 없이 영광의 문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9장에 와서는 8장 말씀에 이어서, 다시금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을 드러내는 말씀을 합니다. 우리는 내가 조금 잘 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도취, 자만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의정보고를 보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은 자기가 하지 않고도 자기가 한 것으로 말한다는 것과 자기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9장에서 하나님이 이러한 본성을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4가지의 설교가 진행됩니다. 1. 앞서 가시는 하나님, 뒤서가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예비하시고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들어갈 가나안 땅은 강대한 나라라고 합니다. 강대한 나라라고 하는 것은 첫째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강대한 것이고, 둘째로 우리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살 곳이 좋은 곳인 강대한 나라를 이긴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강대한 나라라고 할 때는 두 번째의 의미로 강대한 나라로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없고, 첫 번째의 의미로 거기 가면 아낙 자손들이 있다는 의미로 생각을 합니다. 이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 9:3 오늘날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그들을 멸할 것이라 분명히 아낙 자손이 있고, 강대한 나라가 있고, 싸우면 백전백패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보다 더 강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강대한 나라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먼저 가시고, 강대한 나라를 평정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앞서 가신 하나님 뒤에 따라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보다 말씀보다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 던져졌을 때, 세상이 얼마나 잔인합니까!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투쟁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살이 일어나고, 학교 폭행이 심해지고, 교육과 경제의 양극화, 가정의 깨어진 사회입니다. 이 시대 속에서 우리가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고, 괴로운 일입니다. 이러한 사회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불 속을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앞서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뒤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붙잡고 가면 됩니다. 이 믿음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내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같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앞서가십니다. 너희 눈에는 강대한 나라가 보일지 모르지만, 눈을 떠서 강대한 나라를 치시는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2. 은혜 받은 후에 시험을 조심하라 우리는 은혜를 받으면 너무 신나고 기쁩니다. 그런데 은혜 받은 이후에 시험이 옵니다. 은혜가 꽃을 피워야 하는 데, 시험이 은혜의 꽃을 피우지 못하게 합니다. 신 9: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가나안 땅에서 아낙자손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선사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내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살고, 열심히 봉사하고, 주일을 잘 지키고, 열심히 살았더니 복이 왔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무익한 종입니다. 이 사실을 잊어버리면 교만하여 지고,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말하는 것입니다. 신 9:5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낙 자손을 물리쳐 주셨는가? 이는 이스라엘의 행한 일 때문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서 우상 숭배를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두 번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과의 약속 때문입니다. 창 50: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은 알았습니다. 요셉은 애굽 땅에서 죽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알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도하여 주시기로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라. 너희의 의로움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하지 말고 겸손 하라는 것입니다. 3. 목이 곧은 존재임을 기억하라. 신 9: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신 9:13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목이 곧았다는 것은 겸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언제든지 죄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기회만 주어지만 죄를 지을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애굽을 돌아가자고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습니다. 신 9:22 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느니라 민 11:4 이스라엘 중에 섞어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출 17: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신 9:23-24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얻으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오므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 이것이 우리의 존재입니다. 정직하게 우리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얼마나 목이 곧은 족속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싫어하는 것이 우리 아닙니까? 조금만 힘들만 원망하고, 침체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에게 괴롭고 하기 싫은 일은 즉각적으로 순종하기 싫어하는 우리의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주었고, 보호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목이 곧은 존재임을 알려주시는 것은 늘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의로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난 체 할 것이 없습니다. 겸손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존재입니다. 4.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못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항상 목이 곧은 백성이고, 교만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대한 가나안 땅의 나라를 물리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수없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범할 때, 그 때마다 모세는 하나님께 탄원을 합니다. 변하지도 않는데, 용서해달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몇 번이나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70번씩 7번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목이 굳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모세의 탄원하자 용서하고,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이스라엘 백성 앞에 가십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풍성하게 살아갑니다. 아무리 많아도 은혜가 없으면 빈곤하게 살아갑니다. 내편이신 하나님은 앞서가시는 하나님입니다. 기도하시고,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따라가십시오. 천천히 가셔도 괜찮습니다. 그 길이 바른 길입니다. 영광의 길로 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자신의 땅을 만든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영광의 날이 이르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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