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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연구(159) - 신명기[45] 박석화 201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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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 연구 (신명기 32:15-33)

 

 

신명기 32장(2)

 

 

우리가 살펴보는 신명기 32장은 모세의 노래입니다. 모세가 이제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입니다. 모세는 이 노래를 뒤로 하고 33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고 죽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모세의 노래는 의미심장한 유언과 같은 노래입니다. 이 유언과 같은 노래에 가슴 아픈 내용이 들어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한다는 것, 우상을 섬길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선지자의 소명을 발 뒤끝도 좇아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떠날 것이고 하나님이 떠난 사람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이고 이는 감당치 못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목자요 선지자는 바르고 온전한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야 합니다. 모세는 어떠한 영광도 얻지 못했습니다. 왕자의 영광도 못 얻고 미디안의 족장이 되었고, 광야 40년 생활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긍정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모세의 삶 자체는 불가능한 삶입니다. 그러면 원망해야 할 텐데, 모세는 그렇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씀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목자요 선지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던 거처럼 32장 1-14절까지는 하나님이 그들이 어떻게 이끌고 도왔는지 보여줍니다.

 

신 32: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신 32: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오늘 본문은 제목을 먼저 본다면, ‘네가 잊었도다’ 입니다. 생각을 잘 해보세요.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철저하게 먹이시고 입히시고 재우시고 이끄셨습니다. 이 표현을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키움과 같다고 표현하였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어떻게 키우는지 말씀 드렸습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새끼가 자기 힘으로 날게끔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수리가 새끼를 키우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할 때, 누가 이렇게 했느냐? 바로 하나님 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신이 없지 않느냐? 다른 신은 없었다. 분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면 먹이시고 입히신 재우시고 이끄신 하나님을 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15절의 말씀은 ‘그러한데’로 시작합니다. 여수룬은 이스라엘 가리켜 하는 말씀입니다. 여수룬은 의로운 자 훌륭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이야기할 때, 훌륭하고 뛰어난 자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는데, 살찌매 발로 찼다고 합니다. 이들이 살찌고 부대끼고 윤택하매 하나님을 버리며 경홀히 여겼다고 합니다. 이들이 결국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부대끼는 것은 귀찮은 것입니다. 윤택하면 부러운 것이 없이 필요한 것이 다 채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왜 버립니까? 윤택하여져서 그렇습니다. 자발적 불편의 삶을 살자는 것은 먹이시고 입히시고 재우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윤택하면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데기도 거리가 없습니다. 힘들고 지치고 가난하면 기도하게 되어있습니다. 살찌게 되면 하나님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을 때는 하나님만 의지하였는데, 살찌고 윤택하여 지니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하여 보세요. 연애할 때는 모든 것을 바쳐서 산도 강도 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니까 산도 강도 넘지 않습니다. 인간이 똑같습니다. 살찌고 부대끼고 윤택할 때, 이것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신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부패한 본성은 하나님을 버립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유목 생활이 아니라 정착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계표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계표는 땅의 경계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땅 때문에 희년 제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없었던 희년 제도가 나오는 것은 지계표, 땅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은 절대 사고파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착생활 하니까 밭에서 곡식 나는 것 누가 뿌렸습니까? 내가 뿌렸습니다. 추수도 내가 합니다. 고생해서 추수합니다. 누가했습니까? 내가 했습니다. 그러니 점점 하나님이 잊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책망합니다. 하나님이 비를 주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햇빛을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면서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여수룬이 윤택하여 지니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간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용납하실 수 없으시며, 하나님의 노가 격발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신 32: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신 32: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 새로운 신을 섬기게 되고 새신으로 인하여 기뻐하게 된 것입니다. 옛 날 신은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신사도운동, 새로운 물결, 그러한 것들에 요즈음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신앙, 모두 다 새로운 것에 대해서 찾고 옛 것에 대해서 하대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옛 적길로 돌아가라. 너희들이 새 길에 들어왔지만, 옛적 길로 가야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길로 가야한다. 개혁교회로 가자는 것은 선지자들이 말했던 길로 가자는 것입니다. 개혁주의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이 진리를 전할까 고민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똑같은 것을 반복해야 합니다. 바울은 해산하는 고통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수천 번 반복하더라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배운 여러분이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 온 사람이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이 헷갈려 합니다.

왜 새신을 섬길까요? 새로운 것이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의 신이 광야의 신보다 좋게 보였습니다. 가나안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는 풍요와 다산의 신입니다. 이에 비하면 광야 40년에 일용한 양식만 주었습니다. 그러니 나를 풍요롭게 하니 새신이 좋지요. 윤택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니 사람들은 새신을 섬기려고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엉망입니다. 그럼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7천명이 있기에 감사하게 살아갑니다. 살찌고 윤택하니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너무 많아서 어떻게 이야기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배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마십시오. 윤택한 삶을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아굴의 기도처럼 필요한 양식을 가지고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교회가 커지면, 재정이 많아집니다. 돈이 많으니 할 일이 많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향하여 쓰는 것이 아니라 정치하는 데 사용됩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벌고, 열심히 성공해서 많은 돈을 가지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윤택하게 하는데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광야에 있는 누구에게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이끌어 주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새신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보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윤택하게 될 텐데, 그러면 하나님을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지막 노래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 차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윤택하면 반드시 죄 짓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필요한 양식, 일용한 양식으로 만족하는 것이 복입니다. 많이 남기는 것이 복이 아니라 많이 주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하셨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가면 분명하게 너희가 하나님을 떠나 갈 것이니, 내가 너희를 진노하겠다고 말합니다.

 

신 32:19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 한 연고로다

 

그렇습니다. 미워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20절을 보겠습니다.

 

신 32:20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

 

종말의 어떠함을 보는 것입니다. 종말에 이루어질 어마어마한 진노를 보는 것입니다. 21절을 보겠습니다.

 

신 32: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내가 반드시 진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23절을 보겠습니다.

 

신 32:23 내가 재앙을 그들의 위에 쌓으며 나의 살을 다하여 그들을 쏘리로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릴 것입니다. 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2:25 밖으로는 칼에, 방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청년 남자와 처녀와 젖 먹는 아이와 백발 노인까지리로다

 

다 멸망할 것을 이야기 합니다. 26절은 가장 무섭습니다.

 

신 32:26 내가 그들을 흩어서 인간에서 그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다마는

 

이스라엘을 다 기억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광야에서 입히시고 재우시고 먹이시고 이끄셨던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다 끊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좁게는 우리, 넓게는 한국 교회에서 이러한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한국의 수많은 대형교회를 하나님이 끊어 버릴 수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어마어마한 교회가 기억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범죄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준엄합니다. 가나안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그들을 제하여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신 32:28 그들은 모략이 없는 국민이라 그 중에 지식이 없도다

신 32:29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

신 32: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 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

 

신 32:32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나오는 소산물이 독사의 독이라. 광야가 좋습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좋습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독사의 독이라고 하는 곳이 좋습니까? 척박하지만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게 정말로 선지자가 하는 말입니다.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광야의 생활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수없이 많은 과실이 우리에게 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광야가 좋았다고 할 날이 올 것입니다.

요즈음 이러한 말을 합니다. 그나마 옛날에는 어려웠어도 사람의 정이 있었는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를 내놓고 있는가? 그 젖과 꿀이 너무나 좋지만, 그 곳에서 안주하게 되면 우리를 지옥으로 이끄는 급행열차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힘들어도 광야의 하나님, 그 분만이 우리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 많은 그리스도인들,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것 같이 보여도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윤택하면 무섭습니다. 윤택하면 이상하게 겸손해지지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지 깊이깊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내가 잊었도다 하나님을 잊으면 안 됩니다. 광양의 하나님 잊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성공하십시오. 좋은 열매를 맺으십시오. 그것이 윤택의 자리가 아니라 광양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그런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우리만이라도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소망을 부여잡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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