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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연구(158) - 신명기[44] 박석화 20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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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 연구 (신명기 32:1-43)

 

 

신명기 32장

 

 

오늘의 제목은 “모세의 노래”입니다. 오늘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설교에서 중에서도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는 장면입니다. 다음에 읽을 신32:50을 보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라고 말합니다. 모세의 죽음이 임박한 것입니다. 33장에서 축복하고 34장은 마치 후기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34장으로 인해서 모세의 저작이냐 후기의 저작이냐는 논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쨌든 언약의 책인 신명기가 끝나기 전에 32장은 모세의 노래인데, 모세의 노래를 보게 되면 모세가 죽어가는 모습이 있는데, 죽어가는 형식은 첫 번째는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볼 때, 언약이 체결하는 장면을 기록되어 있다. 고대에 언약을 체결할 때, 증인을 세워두고 증인 앞에서 언약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언약에 지키지 못했을 때 벌이 무엇이지 말하고 언약을 체결합니다. 고대에는 언약 체결하는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신명기32장도 모세의 노래이지만, 노래의 모습이 마치 언약을 체결하는 모습처럼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노래에 전반적으로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전체 신명기32장장 1-43절은 4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1-14절로, 1-14절을 보면 특별히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3절에 있는 것처럼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라고 말하면서 그분이 어떠한 존재인지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15-18절을 보면, 그러한데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이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15절 중반에 보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우상 숭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9-33절까지는 한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9절과 33절을 비교하여 같이 보면 이를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신 32:19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 한 연고로다

신 32:33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를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34-43절까지, 그리고 44절부터는 후기입니다. 44-47절까지는 이 노래를 주신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48-52절까지는 모세의 죽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34-43절까지는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가? 41절을 보십시오

 

신 32:41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잡고 나의 대적에게 보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할 것이라

 

그리고 43절을 보십시오

 

신 32:43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고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여 주시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44-47부터는 모세의 노래를 준 이유, 48-52절은 가나안 입성을 허락받지 못한 이유와 모세의 죽음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오늘 살펴본 신명기32장을 통해 살펴본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생각하여보면 먼저 1-14절부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에서 증인을 내세웁니다.

 

신 32: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증인이 누구지요? 하늘과 땅입니다. 구약 성경 선지서들에서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땅이여, 하늘이여 들으라고 외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내가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증인을 삼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 말에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영원함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하늘과 땅을 말하는 것은 영원한 언약이다. 영원한 증인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이 양심선언을 하였는데 세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동일한 하늘이고 땅은 동일한 땅입니다. 모세는 하늘과 땅을 증인 삼아서 이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증인으로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에 비장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의 선언은 비장합니다. 성경을 읽으실 때 이러한 내용이 기록된 것을 늘 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표현할 때 여호와는 반석이라 합니다. 이 반석이라는 것은 영원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모세가 노래하는데, 일단 증인을 내세우고 내가 이 증인 앞에서 이야기 한다. 이 증인 앞에서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짓말 하면 하늘과 땅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이야기합니다.

모세가 하늘과 땅 앞에서 증언한 하나님을 어떠한 분으로 이야기 합니까? 2절에서 말합니다.

 

신 32:2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 비로다

 

이 하늘과 땅의 증인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죽이는 말이 아니라 생명을 낫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내리는 비, 맺히는 이슬, 연한 풀 위에 가는 비, 채소 위의 단비 모두 모두가 생명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이 노래는 증인 앞에서 내 백성을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충만함, 영적인 행복함, 만족함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12장에 있는 것처럼 사생자는 때리지는 않지만, 자기 자식은 때려서 키운다. 진짜 자신에게는 어떠한 말을 함으로도 죽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입니다. 아들이 고기를 달라는데 뱀을 달라고 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아들을 위해서 고기를 주는데, 때때로 고기가 채찍질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17세기 훌륭한 언약도 목사님인 사무엘 러더포드는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겨울에 하나님의 은혜는 더 크게 임한다.’ 이 말에서 겨울은 고난과 어려움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더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얼마나 사악하고 나약한지, 힘들면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기도하고 예배하지 말라고 해도 예배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편해지면 날라리가 됩니다. 고난이 있어야 기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난을 있지 않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없게 하여 달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고난이 있어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당한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고난이 있어야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까요? 배부르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살만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의 심판의 말씀을 전할 때 그것은 우리를 죽이고 절망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살리고자 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인 앞에서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야기 합니다. 3절입니다.

 

신 32:3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하나님의 이름을 선언합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본문에서는 두 가지로 이야기 하는데, 첫 번째로 4절에 나타나는 데 하나님은 반석입니다.

 

신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반석이라는 의미를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반석이라는 의미를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면 공덕이 완전하다고 말합니다. 공덕이 완전하다는 것은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 모든 길이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의로시고 정직하다고 말합니다. 이 반석에서 이야기할 때 공덕이 완전하고 공평하며 진실 무망하시면 공의로시고 정직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반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신약 성경에서는 반석을 믿음으로도 표현합니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듯이 말이죠. 오늘 본문에 보면 반석에 대한 말씀이 지속적으로 나옵니다. 반석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진실하신 하나님, 정의로우신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 그가 하는 일이 완벽하신 분이다. 정의로우신 분이다. 진실하신 분이다. 뿐만 아니라 정의로우신 분이시다. 그 분이 반석입니다. 그 반석은 곧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러하십니다. 사람은 변화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6절에 보면 이렇습니다.

 

신 32: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첫 번째로 생명을 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라고 하는 의미는 남성성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생명이 아버지께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라고 하는 개념 중 두 번째는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신 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아버지는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할 때,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오늘날 아버지의 모습이 변질되어서 아버지의 의미를 풍성히 못 누리지만, 아버지라는 의미는 끝까지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아버지라고 하면 눈동자 같이 지켜주시는 분이다.

세 번째 아버지라고 하면, 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신 32:8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수효대로 나누어 줍니다. 이 말씀을 해석하는데 많은 분들이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저는 본문의 말씀을 깊이 들어가지 않고 말씀이 주는 뉘앙스를 생각할 때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에 맞게끔 나누어 주시는 분입니다. 많은 것에서 토산물을 얻으면 더 많이 내서 돕게 하십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많이 내서 레위인과 가난한 자를 돕게 합니다. 하나님 참으로 지혜롭습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다. 이는 나를 낳으신 분이요. 나를 지켜주신 분이요. 지혜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1절에 아버지는 네 번째는 훈련시키시는 분입니다.

 

신 32: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아버지는 훈련시켜주시는 분이라는 것은 아버지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자녀는 아버지를 통해서 무엇을 배우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가르쳐 주시는 분. 모든 자녀는 아버지로부터 배웁니다. 죄가 저항하는 것은 코너에 몰렸을 때입니다. 잘못했다고 인정 안하겠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3-5살에 잘못한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좋게 만들면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새끼가 날지 않습니다. 날개 짓하는 것은 힘든 것입니다. 무언가 변화시키는 것은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떨어뜨리면 자동적으로 살려고 날개 짓합니다. 그런데 새끼 독수리가 날지 못하면 어미 독수리가 내려가 새끼 독수리를 데리고 온 다음 다시 새끼 독수리를 떨어뜨립니다. 절벽 밑으로 새끼를 떨어뜨릴 때 아비의 마음은 어떨까요? 날기 전까지 아버지도 힘들고 자식도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알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러한 분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고백할 때, 우리를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기 위하여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 받음이 내게 유익이라고 하는 것은 고난 받는 것은 내가 걷고 뛰고 달려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백성에게 두 가지를 주십니다. 하나는 잠을 주시고, 두 번째는 고난을 주십니다. 잠은 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계속 고난만 주면 죽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오묘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부성성이 아니라 이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13-14절은 그러한 자녀들을 위하여 젖과 꿀을 주시는 것입니다. 살아가도록 끝까지 인도하여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신 32:13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신 32:14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아버지라고 하는 놀라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변해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버려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할 때, 부성성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 의미를 가지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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