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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연구(170) - 여호수아[6] 박석화 201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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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 연구 (여호수아5:1:-12)

 

 

여호수아 5장

 

 

오늘 우리가 읽은 여호수아 5장의 말씀은 요단강을 건넌 후 첫 번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요단 서편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오자, 요단 서편에 있었던 가나안 지경에 있던 모든 나라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왔다는 사실에 두려워합니다. 성경은 이를 마음이 녹았고, 정신이 잃었다고 표현합니다. 요단강은 지금 물이 가장 많을 때입니다. 그래서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나라들은 요단강이 가라앉기까지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을 보고 정신을 잃었고 그의 마음이 녹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에 처한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시행합니다. 할례를 시행하면 일주일 동안은 장년 남자들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 가나안 백성은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쳐들어 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밟는 순간 이루어진 것 입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놀라운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 5:2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2절 말씀에 ‘그 때에’ 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일하심이 어떠하신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때, 즉 가나안 백성의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을 때에 할례를 행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때가 정확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향한 것은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아주 적절하게 이루십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그 때에 일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은 무엇인가?

 

 

1. 할례

 

할례를 통하여 심판과 회복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 됨의 표시입니다. 선민이라는 표시입니다. 할례가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이는 이방인도 예외도 아니었습니다. 할례를 받아야 이스라엘 백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 속하여 있었습니다.

 

수 5: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음으로 그들에게 심판 징계를 내리십니다. 그들이 약속한 땅 가나안을 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40년간 다 죽습니다. 유일하게 가나안 땅을 보게 되는 사람은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 뿐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은 전부 다 할례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할례를 베푸십니다. 할례는 회복입니다. 이제 너희들에게 내 백성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할례를 행하시는 모습인 것입니다.

 

수 5:8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수 5: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애굽의 수치가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 큰 수치이죠.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할례를 받음으로 수치를 회복해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 받은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는 인 치심을 받은 것입니다. 광야 40년간의 수치가 단 한순간에 사라져버립니다. 하나님은 징계 하실 때가 있고, 회복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생활한 한 세대가 사라진 것입니다. 한 세대가 지난 간 후에 광야에서 치유를 다음 세대가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 가심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옛 사람의 모습이 가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새로운 피조물이 가능한 것입니다. 애굽의 모든 수치를 다 건너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에게 가나안을 주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죽은 이후에 420년 이었습니다. 그리고 400년 동안 암흑기였습니다. 40년이라는 것은 길지만, 하나은 하나님의 시간과 심판에 의하여 움직입니다. 이는 내가 나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때때로는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살리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아파하시지만, 온전히 회복할 때 기대합니다. 회복의 역사는 한 번에 일어납니다. 우리의 죄는 단번에 다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제 광야를 넘어와서 하나님의 약속 하신 할례를 행하고 애굽의 모든 수치가 물러갔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길갈은 위대한 약속입니다. 구원의 선포 같은 것입니다. 길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임의 뜻이 명확하게 일어지는 일입니다.

 

 

2. 만나 사건

 

수 5:10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수 5: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유월절 이튿날 그 땅의 소산을 먹습니다. 길갈에서 다 치유함 받고 그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을 요단 서편에서 첫 번째로 지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하심이 가나안 땅에서 성취됨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제 가나안에서 유월절을 지킵니다. 유월절 이튿날 그 땅을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칩니다.

 

수 5:12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만나가 끝나고 가나안 땅의 소산이 시작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신묘막측함을 보게 됩니다. 땅이 이스라엘 백성에서 선물되었을 때,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가 갖지 못하고 행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얻을 수 있게 할 때, 하나님께 우리가 먹을 수 있게 합니다. 먹을 수 없을 때는 교회를 통해서 그 일을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을 때, 내 손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자신의 손을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유목민의 생활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채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목사의 삶을 향하여 하나님이 채우심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만나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땅의 소산을 먹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먹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할 때와 끝낼 때가 정확하십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채워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한다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이것이 만나의 원리입니다.

또한 이것은 국가의 원리입니다. 가난한 자와 과부와 고아를 먹이는 것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자신의 번 돈에서 70%의 세금을 내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려고 해도 하나님이 가져가시면 한 순간에 없어집니다. 집사가지고 부동산 투기해서 한 몫 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방법과 계획대로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겠습니까?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려고 몸부림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것이 맞습니다. 일할 수 없는 자들을 위해 섬기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정확하고 동일하였습니다. 너희가 옷이나 신발이 헤진 적이 있느냐? 40년 동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첫 유월절 지나자마자 소산이 주어진 것입니다. 땅이 주어졌고 소산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하면 우리의 삶이 명백해 진 것입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입니다. 먹는 것 입는 것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이 이것이 있어야 할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안다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녀들이 필요한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끝맺을 때와 시작할 때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열심히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궁리하고 배우고 훈련하고 배워서 우리의 삶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를 때, 어떤이는 저는 장사지낸 뒤 따르겠다고 하고 장가든 뒤 따르겠다고 하고,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따르겠 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 버려두고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돈 많은 청년이 왔습니다. 네가 가진 재물 다 주고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따르실 것입니까? 지금 우리는 예배와도 생명의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지장이 있다면 예배에 오겠습니까? 왜 예수 믿으습니까? 만족을 누리기 위해서 입니까? 죽는다고 하여도 예배에 올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오래 살려고 합니까? 만나 사건 앞에서 우리 신앙을 철저히 점검해야 합니다. 사막으로 보내는 것은 죽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는 극단적인 상황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이나 중동이나 회교 국가에서 극단적인 상황이 올지 모릅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 믿음 없이 어떻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이 믿음이 없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너무 편한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보이는 것을 붙잡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체 입니다. 여러분 생각하여 보십시오. 예배를 목숨과 같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지금은 목숨을 걸고 예배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편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된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 만나를 끝내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문제는 말씀을 전하는 목사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진진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역사는 실제 역사였고,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박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절박함은 생명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바꿀만하다면 믿음이 조금 생긴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바꿀 수 없다면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아직 좋기 때문입니다.

희망적인 것은 하나님은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생명을 던지면 생명을 보호하십니다. 그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참 믿음을 가진 만나의 사건을 가지고 우리가 배우는 것입니다. 광야로 가라면 가면 됩니다. 뛰어 내리라면 뛰어내라면 됩니다. 주라고 하면 주면 됩니다. 따지는 순간 우리는 위험에 빠집니다.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이 방황한 이유는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우리의 믿음을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수치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자기 백성이 영광 받기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가라고 하면 가는 것입니다. 주라고 하면 주면 됩니다. 죽으라면 죽으면 됩니다. 이것이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습니까? 살으셨습니까? 죽으셨으나 살으셨습니다. 죽으면 삽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살아나는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줄 때 받는 즐거움을 압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오묘막측한지 모릅니다.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 절박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박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절박한 기도가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만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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