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 >

 

구속사적 성경연구(188) - 사사기[2] 박석화 2013-06-21
  • 추천 0
  • 댓글 0
  • 조회 267

http://lightsalt21.onmam.com/bbs/bbsView/36/95384

구속사적 성경 연구 (사사기1:11-2:5)

 

 

사사기 1장(2)

 

 

오늘 말씀을 보면서 세 단락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은 11-15절, 두 번째 단락은 16-36절, 세 번째 단락은 2:1-5절까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의 내용은 이스라엘 정복 전쟁 가운데 시행된 결혼식입니다. 그러고 나서 둘째 단락은 정복전쟁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8지파가 어떻게 가나안을 정복하고 있는지, 그리고 전쟁 중에 나타난 불순종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세 번째 단락은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2:5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삿 2:5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보김이라는 지명은 이스라엘 백성이 4절에 말씀하는 것처럼 우는 자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회개의 눈물,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곳이 보김이라는 곳입니다. 본문의 제목을 참된 믿음과 순종이라고 붙이면서, 본문의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참된 믿음과 순종

 

첫 번째 단락의 내용을 보게 되면, 기럇 세벨을 물리친 자에게 갈렙이 내 딸을 주겠다고 합니다. 갈렙이 가는 곳은 힘들고 어려움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곳을 치기 위하여 용기 있게 가는 자에게 갈렙은 자기 딸을 주겠다고 합니다. 이에 조카인 옷니엘이 기럇 세벨을 치고 정복을 합니다. 그러자 그 딸 악사를 그의 아내로 주는 것을 봅니다. 악사가 출가할 때에, 갈렙에게 요구를 합니다.

 

삿 1:14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나귀에서 내릴 때를 조금 자세히 보면, 한국어 표현에 나와 있지 않지만 영어로 표현 미끄러져 내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미끄러져 내렸다고 하는 것은 겸손하고 예우를 하며 요구하는 모습입니다. 이러면 악사가 갈렙에게 샘들과 밭을 달라고 합니다. 이에 갈렙은 아랫 샘과 윗 샘 그리고 밭을 다 줍니다. 이 장면은 전쟁 가운데 행해진 결혼입니다. 전쟁과 결혼을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서로 반대되는 것입니다. 전쟁은 슬픔, 아픔, 고통을 연상시키고, 결혼은 기쁨과 생명을 생각하게 합니다. 옷니엘과 악사의 결혼식 전에 아도니 베섹이 손발이 절단된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쟁이 가져다준 참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전쟁과 결혼을 대비는 아도네 베섹과 옷니엘의 결혼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아도니 베섹은 하나님을 배신한 사람입니다. 옷니엘과 악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와 하나님을 경외한 자의 모습을 전쟁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멸시한 자의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한 자의 결과는 새생명이었습니다. 아도니 베섹은 죽음을 의미하고, 옷니엘과 악사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본문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생명을 낳지만, 불신은 멸망을 낳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사사기를 보면서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왜 갑자기 결혼이라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가? 전쟁 가운데 결혼이 있는 것은 전쟁 가운데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아도니 베섹과 옷니엘과 악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않은 자의 열매, 즉 생명과 죽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생명을 얻지만, 하나님을 불신한 자들은 비참한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도니 베섹은 얼마나 대단하고 화려하게 살았습니까? 그런데 그의 마지막은 멸망을 이르게 됩니다. 옷니엘과 악사는 광야 생활 가운데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열매는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참된 믿음을 얻으면, 어렵고 힘들더라도 영광을 얻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은 멸망에 이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불신한 자를 피하여 가지 않습니다.

또한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은 그 환경과 상황이 어떠할 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험악한 상황 가운데 믿음을 가지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같은 현실을 살아도 전혀 다른 열매를 믿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믿음은 생명을 이르지만, 불신은 멸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옷니엘과 악사를 통해서 보는 것입니다.

 

 

2. 순종은 영광을 낳고 불신은 고통을 얻습니다.

 

두 번째 단락인 16-36절에서는 이스라엘 정복 전쟁에 대한 것으로 독특한 것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어기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불순종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23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수 23:7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나라들 중에 가지 말라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에게 절하지 말라

수 23:8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수 23:9 대저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날까지 너희를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수 23: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수 23: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수 23:13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그러면서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너희 한 사람이 천명을 이길 것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진멸하면 된다. 저희를 용납하지 말고 다 진멸하고 다 쫓아내라. 쫓아내지 않으면 덫이 되고 눈에 가시가 되고 올무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삿 1: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삿 1: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삿 1:26 그 사람이 헷 사람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날까지 그곳의 이름이더라

삿 1:27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삿 1:29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하였더라

삿 1:30 스불론은 기드론 거민과 나할롤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가나안 사람이 그들 중에 거하여 사역을 하였더라

삿 1:31 아셀이 악고 거민과 시돈 거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삿 1:33 납달리가 벧세메스 거민과 벧아낫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거민들이 그들에게 사역을 하였더라

삿 1:34 아모리 사람이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하고

 

분명히 하나님이 약속하기를 한 사람이 천명을 물리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다 물리치라고 하였는데,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삿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이 모습은 이스라엘의 8지파의 가나안 정복 전쟁 중의 불순종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면서 순종은 영광을 얻고 불신은 고통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하였다면 가나안 땅을 온전히 얻고 아름다운 영광의 모습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불신함으로 고통하며 눈물로 회개하며,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저주하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불순종은 반드시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만큼 슬프고 가슴 아픈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신하였고 고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고 가시가 되고 채찍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대해 온전히 순종할 때 영광에 이르게 하고, 그러나 말씀에 대한 의심과 불순종은 고통에 이르게 합니다.

 

 

3. 죄의 유혹은 치밀하다

 

왜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었는가? 죄의 유혹은 치밀하고 적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유다 족속이 거민들을 좇아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삿 1: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육탄으로 싸우는 사람에게 철병거는 지금의 탱크와 비행기를 가진 것입니다. 이를 본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죄는 두려움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 한 사람이 천명을 이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철병거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돈은 우리로 빈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합니다. 이 두려움을 가지면 죄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현실을 보게 합니다. 철병거가 하나님보다 두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살면서 하나님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보다 두려운 것이 있다면 죄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자녀가 될 수 있고, 건강이 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잘 챙겨야 합니다. 그러나 건강을 하나님보다 두려워하는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보다 두려워하면 죄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죄는 요셉 족속의 모습에서 잘 드러납니다. 22절을 보면, 세상과 타협하게 합니다.

 

삿 1:22 요셉 족속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벧엘을 무찌르라고 했으니, 좀 더 빠른 길이 있다면,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더 낫지 않겠는가? 이왕이면 빠른 길이 좋지 않으냐? 요셉 족속의 모습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왕이면이라는 타협이 혼합주의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타협은 정말 무섭습니다. 27절의 므낫세 족속을 보겠습니다.

 

삿 1:27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죄가 얼마나 끈질긴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속화가 우리 안에 들어오면 잘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쉽게 편한 복음이 우리를 얼마나 유혹하는지 모릅니다. 쉽고 편한 길이 행복할 수 있을까? 값싸고 편한 복음이 우리 몸에 잘 맞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사람처럼 나가지 않다고 결심을 하여, 함께 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본문을 보면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영적인 자만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밀어붙였고, 몇 명 안 남았습니다. 이전에는 소수였으나 이제는 다수가 된 것입니다. 자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그들이 너희에게 가시가 될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작은 가시 하나가 우리의 온몸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정도까지 되었다고 하는 것은 가시 역할을 합니다. 끊임없이 겸손해야 하고, 주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의 확신을 가지고 우직하게 걸어야 합니다. 때때로 말씀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긴 시간이 걸리면 답답합니다. 시간이 흘러가는데, 하나님의 약속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괴롭거든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와도 언약을 맺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맺어주신 언약을 바라보고, 그 언약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죄악가운데 떨어지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모습을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은혜와 약속을 붙잡고 우직하게 믿고 걸어가는 것이 죄의 자리에 떨어지지 않고 영광과 생명의 자리에게 가는 길인 것입니다. 말씀보다 보이는 현실이 크게 보일 때 조심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보이는 현실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이는 현실에 삼킴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사기 말씀을 보면서, 약속의 말씀을 부여잡고 어떠한 순간에도 영적의 자만의 자리에 서지 않고,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구속사적 성경연구(189) - 사사기[3] 박석화 2013.07.05 0 313
다음글 구속사적 성경연구(187) - 사사기[1] 박석화 2013.06.12 0 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