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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식 목사의 구속사적 성경연구(237) - 사무엘상[10] 정대원 201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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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연구 (사무엘상 2:12-25)

 

사무엘상 2장 (7)

 

 

오늘은 한나의 위대한 기도가 끝나자마자 슬프고 가슴아픈 기록을 보게됩니다. 한나의 기도를 본 환희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슬픈 장면을 보게됩니다. 한나의 기도가 위대한 것은 확고한 지식과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환경 가운데 실망하지 않고, 좋아진 환경 가운데서도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한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역전시키시는 분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96세되신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시대에 계신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이 말씀을 하셨는데, 하나는 성도들이 은혜받을 권리를 사용하지 않아서 오늘날 성도들이 은혜없이 힘없이 산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고 왜 버리느냐 말씀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한번도 광복을 이렇게 오리라 생각못했는데, 갑자기 어느순간 왔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사람이 막을 수가 없다. 그래서 통일에 대한 염원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언제 그 일이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한나의 마음과 동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철저히 대비되는 인물입니다.

왜 이렇게 대비되었을까. 한나와 홉니와 비느하스는 동일한 시대에 살고있었습니다.

한나도 있고, 홉니와 비느하스도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다 공존하는 것이죠.

그래서 알곡과 가라지가 있는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출신이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 때 제사장의 직분은 세습되었고, 존경과 사람들로부터 대우는 매우 좋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의 삶을 책임져주셨고,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모든 면에서 부족할 것이 없었습니다.

이 홉니와 비느하스는 오고오는 모든 역사 가운데 가장 불행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엘리는 어떤가요? 아들 때문에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본문이 어떤내용인지 세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떤 사람인가?

이들은 불량자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불량자의 이름 뜻은 사단의 아들들이라는 뜻입니다.

도대체 이들의 행동이 어떠하였기에 불량자라는 호칭을 들었을까요?

13-16절 봅시다.

말씀을 보면 자기들 마음대로 율법을 훼파합니다. 제물들을 마음대로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 앞에서 범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백성들이 만류합니다. 그래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들을 유린시킨 자들입니다. 제사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한 것입니다.

결과는 어떤가요? 22절 봅시다.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합니다. 간음죄를 범합니다. 성전에서 말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지위를 가지고 부끄럽게 행하는 자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이 홉니와 비느하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외형은 제사장이었지만 그 속은 사단의 소굴이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회칠한 무덤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들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정말 하나님을 알았다면 이러한 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바울이 말한대로 열심은 있었지만, 지식은 없는 것입니다.

열심은 있는데, 믿는 내용이 없는 거예요. 이것이 홉니와 비느하스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제사하고 사용하는지는 잘 알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지하였습니다. 이들의 마음에는 아버지와 백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지도자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관계 없는 종교적 열심만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한 일을 볼까요?

17절 봅시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은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사 마지막 시대에 이러한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의 타락은 곧 그 나라의 영적 상태는 처참해 집니다.

 

세 번째, 이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기회가 있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실수합니다. 그러나 실수를 극복하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 각도로 회개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백성들을 통해서 왔습니다.

저도 목회자의 길을 걸으면서 깨닫습니다. 귀를 열어놔야되겠다 생각합니다.

지난번 예결산 할 때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재정에 대해서 질문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생각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또한, 아버지 엘리로부터 회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3-25절 봅시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것을 놓쳐버렸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말씀하셨지만 듣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탕자라도 돌아오면 맞아주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홉니와 비느하스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한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영적인 가정의 중요성을 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육적이면서 영적인 공동체입니다. 서로가 사랑하고 배려합니다. 부모 자식 간에 친구관계가 형성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영적인 관계에 서야 합니다. 이 관계가 깨지면 육적 관계만 남습니다.

예수 믿어도 육적인 가정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가정을 위해서는 가정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가정에서 말씀 나누고 기도할 때, 바른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가정예배가 이렇게 소중한데 가볍게 여길 때 안타깝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를 보셔야 합니다. 엘리의 부드러운 말은 결국 엘리와 홉니와 비느하스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엘리는 자녀를 향하여 강력하게 징계해야만 했습니다. 말씀이 없고 형식만 남는 가정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가정예배 드리는 가정은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가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가정 공동체, 또 하나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가정예배와 주일예배가 연동될 때 건강한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도 불량자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저는 더더욱 가정예배가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늘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줘야 합니다.

가정예배와 주일예배에 목숨 걸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가 되어지면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어설픈 신앙에 머물면 안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자라가야 합니다. 바른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믿음은 아는 것입니다. 알아야 즐깁니다. 알지 못하면되게 서먹서먹해요.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교회생활 오래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위기가 찾아옵니다. 마치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이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아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처음 된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자가 처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차이 때문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영적인 위기가 오면 견고한 신앙인지 드러납니다. 시험의 파도가 오면 다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하나님을 아는 일에 열심을 내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죄악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바로 그 때 회개의 기회가 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올 때, 무릎 꿇고 회개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주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악을 사하실 것이요.

홉니와 비느하스가 놓쳐버린 실수를 우리는 저지르면 안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최후를 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죽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번 한해, 가정예배에 매진합시다. 그리고 회개의 소리가 들릴 때, 그 자리에 무릎 꿇고 회개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영적인 즐거움 가운데 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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