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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식 목사의 구속사적 성경연구(242) - 사무엘상[15] 정대원 201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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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연구 (사무엘상 4장 12-22절)

 

사무엘상 4장 (2)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쟁에 참여한 베냐민 지파 병사가 패전의 소식을 가져오고, 엘리는 자신의 아들이 죽었고,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가 빼앗긴 소식을 듣자,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출산할 때 남편이 죽었고, 언약궤가 빼앗긴 소식을 듣습니다. 새생명을 낳는 상황 가운데 최악의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죽음의 내 자신을 내놓는 모습을 봅니다.

20절 죽어갈 때에

자괴감과 절망에 처한 자신의 모습이 비참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이 모든 모습은 이스라엘의 비참함을 잘 보여줍니다. 엘 리가 다스린지 40년을 다스렸는데, 이것이 마지막의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마지막이 부끄러우면 이 인생은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엘리를 기억하는 자들은 그의 비참한 죽음만 기억합니다.

 

이러한 불행이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이뤄진 것을 보게 됩니다. 비느하스의 아내가 이가봇이라 아이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곳은 절망과 황폐함만 남습니다.

 

21-22절은 본문이 보여주는 가장 비참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비느하스가 왜 이런 고백을 하였을까요. 가족의 불행함 때문에 한 말일까요?

그래도 복된 생명인데 말이죠. 이건 정상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만큼 상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비참함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은 이 사실을 가감없이 기록함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들려줍니다. 이 슬픈 역사를 기록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교훈과 책망, 신앙을 점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교훈을 생각해봅시다.

 

1. 하나님의 영광은 성경과 우리의 삶의 중심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궤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뒤로 넘어져 죽습니다. 성경은 나이많고 비둔한 연고라. 이 이유 때문에 죽었나요? 균형을 잡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육체적 죽음을 묘사하는 것 이상입니다. 이것은 엘리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황이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인간의 만족과 즐거움만이 이스라엘에 남아있는 것이죠.

4장 1-11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전쟁에서 지고, 언약궤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말이죠. 그저 우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인데, 이것이 없다면 비참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핵심은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요리문답 제1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는 영광받기 위하심입니다.

그런데 창조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다면, 비참한 결과만이 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적으로 가진 것은 여호와의 궤입니다. 이는 임재와 영광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은 여호와의 궤를 중심으로 살아갔습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궤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손에서 떠난 것이죠. 그럼 생명이 떠난 거죠.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과 엘리는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비느하스 아내가 말한 이가봇은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남편과 시아버지의 죽음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기 때문에 이가봇이라 지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 생명은 얼마나 비참할까요?

아이가 태어났는데 부모가 없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끔찍합니다.

우리가 볼 때, 아이의 탄생은 축복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가정에 태어난 아이는 축복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가봇은 마치 전자의 모습과 같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마음이 담겨져있는 것입니다.

 

궤가 없이 시작하는 아이를 보며 어머니의 고통스러움을 보여줬고, 이스라엘의 황폐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정말 비참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들은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이라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없으면 황폐함이 자리잡습니다. 그게 물질, 권력, 쾌락인 것이죠.

 

우리 사회 속에 황폐함이 너무 많습니다. 엽총으로 살해하는 사건을 봅니다. 돈이 얽힙니다. 미움과 시기, 질투가 난무합니다. 황폐해지면 성도가 될 수 없고,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비참함만 남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교회는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겉모양은 아무리 화려해도 거기에는 이미 잡풀만 무성한 것이죠.

이게 얼마나 씁쓸한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도 어떤지 생각해봅시다.

 

내가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서지 않는 기도와 예배가 어떤가요? 여러분 안에 깊은 만족과 즐거움이 있으신가요?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 말씀, 기도는 황폐함입니다. 거기에 어떤 기쁨과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도 늘 그 안에 공허함만 남을 것입니다. 공허함은 성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났는데, 똑같아요. 생각도 말도 행동도 다 똑같습니다. 문제는 자신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말씀이 오면 싹 지나가고 맙니다. 왔는데 남아있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진노만 쌓일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드렸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올라간 것이죠. 자신의 생각과 만족을 위해 예배합니다.

신약에서는 헤롯대왕이 자신을 신이다 추대합니다.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예배, 영화롭게 하는 목적이 상실된 예배, 여기에는 인간의 모습만 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쓰여져야 합니다. 당장 진노가 임하지 않는다해서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바로잡아 주십니다.

너 나한테 기도해라. 원수갚는 것은 내가 하겠다. 언젠가 하나님이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는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이 죽음을 볼 때, 가슴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비참하다는 사실이죠.

 

이 비참함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겠다 말씀하십니다.

 

엘리와 비느하스의 죽음을 볼 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가졌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나의 경험,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려고 합니다. 사울, 나답, 아비후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신대로 행동해야 하는데, 내가 경험한 것을 더 우선시합니다.

내 생각과 내 마음에 맞는 것으로 행동할 때, 이것은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날마다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됩니다. 그래야 순종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로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친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감람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고, 철저히 아버지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자의 충만한 자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그를 지극히 높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나를 따라오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리, 예수를 붙잡고 사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날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날마다 서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리에 섭니다.

우리 스스로는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고 싶습니다. 오직 교만에 떨고 싶고, 가지면 떵떵거리고 싶습니다. 별것도 아닌 지식으로 으스대며 삽니다. 돈만 있으면, 권력만 있으면 난리가 납니다. 우리의 능력과 본성으로는 영광의 자리에 이를 수 없지만, 오직 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입니다. 그 삶, 그 길, 그 말씀을 붙잡고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앞에 서 있어야 복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비느하스의 아내, 엘리의 죽음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삶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영광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영화롭게 살고자 몸부림 치고 있는가.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길입니다. 하루종일 그분과 동행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잠자리에 이르는 삶. 붙잡혀있을때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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