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 >

 

신동식 목사의 구속사적 성경연구(243) - 사무엘상[16] 정대원 2015-03-16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305

http://lightsalt21.onmam.com/bbs/bbsView/36/95442

구속사적 성경연구(사무엘상 5장 1-12절)

 

 

사무엘상 5장 (1)

 

 

우리가 살펴볼 5장은 여호와의 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궤를 가지고 싸우면 이길거라 생각하고 나아갔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였고, 여호와의 궤가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죽었고, 엘리도 죽었습니다. 이가봇이라는 비참한 상황이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통곡하며 처해있는 상황에서 여호와의 궤를 빼앗아간 블레셋 안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무엘상 5장은 블레셋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상 5장을 통해 블레셋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 아닌가요? 블레셋의 진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라. 마치 이러한 모습처럼, 하나님은 그 블레셋 심장에 들어가셔서 블레셋의 심장을 파멸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상황을 살펴봅시다.

 

여호와의 궤를 블레셋이 빼앗아서 에벤에셀에서 아스돗으로 가져가고, 다곤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같이 놓았는데, 다곤신상이 넘어져있었고, 목도 팔도 부러져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다곤신전에 문지방을 넘지도 않았다고 할 정도로 두려워했습니다.

그것 말고도 아스돗에 독종이 일어납니다.

6절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니

 

결국 통곡소리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승리의 소리가 통곡의 소리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돌려주려고 해서 가드로 보냅니다. 그곳에서는 더 큰 독종이 나게 합니다. 큰 자나 작은 자나 다 독종이 나게 합니다. 이에 그들이 또 다시 에그론으로 보냅니다.

10절이죠.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가로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에그론 사람들이 두려워하였습니다. 사실은 전쟁에서 중요한 건 적의 심장을 가져오는 거잖아요. 깃발을 빼앗아 오는 게 중요합니다. 깃발을 꼿아야 합니다. 625전쟁에서 서울을 사수할 때, 시청에 깃발을 꼿고,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 태극기를 꼿은 것과 같습니다. 군대의 심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심장은 언약궤를 가져왔으니, 전쟁의 승리를 확인하는 전리품이니까요. 그런데 이 전리품을 서로 갖지 않으려고 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에그론 사람들은 너무 두려워했습니다.

 

 

11절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절을 봅시다.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살아있는 사람들이 끔찍한 거예요. 완전히 엉망진창인 거죠. 전쟁의 승리가 승리가 아닌 거죠. 반면에 이스라엘은 어떤 상태죠? 이스라엘은 통곡의 상태에 있는 거죠.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거죠. 블레셋도 이스라엘도 통곡입니다. 누가 승리자입니까? 블레셋인가요? 이스라엘인가요? 이 전쟁의 승리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속하여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지속됩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말하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다고 고백합니다. 구약 성경 전체의 흐름이죠. 이긴게 이긴게 아니고, 진게 진게 아닙니다.

 

우선, 이 당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요?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한가지는 블레셋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 있습니다. 세가지입니다.

 

첫 번째, 여호와만이 참 신이시다. 블레셋은 다곤을 믿고 전쟁에 나가서 이겼습니다. 다곤이 참 신이라는 생각을 가졌겠죠.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다곤의 심장에 들어가서 산산조각 내버립니다. 아무 쓸모없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다곤은 돌덩어리일 뿐이라는 거죠. 참 하나님은 여호와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신들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본문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이 만든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상 6장에 보면, 벧세메스에 보내는 사건을 보아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그 절정은 다니엘서를 보면, 이방 다리오왕이 사자굴 속에 들어있는 다니엘이 타지도 않고 건짐을 받잖아요. 다니엘 앞에서 6장 26절-28절 절에 기록됩니다.

26절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다니엘의 모습을 보면서 다리오왕은 불가항력적 힘에 의해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다리오왕도 다른 신을 섬겼지만, 사자굴에서 건져낸 하나님을 보며 사시는 하나님이시다 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모습을 보면 삼손이 떠오릅니다. 그 신전을 다 무너뜨리고 맙니다. 참 하나님임을 드러내줍니다. 이 이방의 신전에 들어가서 이방신을 다 무너뜨린 것입니다. 다곤신으로 이긴게 아니라 나의 주권과 뜻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시행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독종을 일으킵니다. 아스돗, 가드, 에그론 사람 모두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하시는지 보여줍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멸시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신이 났을 거예요. 하나님에 대해 비난하며 비웃었겠어요? 자신만만하게 다곤신전에 갖다 놓은 거죠. 가치 없이 여긴거죠. 다곤신께 드리는 제물처럼 여긴 것이죠.

하나님을 멸시한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 대해 그들을 멸하셨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골리앗을 향하여서 네가 여호와를 모욕하였다 라는 거죠. 골리앗이 왜 무너졌습니까. 다윗이 뛰어나고 대단한 전력을 가지고 있고, 강속구로 던져서가 아니라, 여호와를 모욕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치욕스러운 방법으로 골리앗을 죽이는데 어린 소년인 다윗을 통해서 말입니다. 골리앗은 여호와를 모욕한 자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손에 순종하는 자만이 사는 길임을 보여줍니다.

블레셋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몰랐을까요?

사무엘상 4장 8절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블레셋은 광야생활을 통해 일을 벌이셨음을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은 하나님의 손이 임함을 보았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무너진 다곤 신 앞에서 그들은 회개하고 자복했어야 하는데, 그들은 하지 않았습니다. 자꾸만 꼼수 피우는 거죠. 아스돗에서 가드로 에그론으로 보내는거죠. 계속해서 그래도 우리가 끝까지 궤를 가지고 있으므로 전쟁에 승리하였음을 자랑하고 싶은거죠. 옮기지만 보내지 않는거죠. 여호와의 손을 인정하지 않는거죠. 결국 독종으로 사람이 죽는데 보내지 않습니다. 마치 바로와 같은 모습이죠. 강팍한 마음들, 변하지 않죠.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잘나서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인격적 고백이 없음이 가져다주는 무익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엘리와 홉니와 비느하스의 시대가 얼마나 추악한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로지 우상숭배와 같은 그러한 신앙과 같습니다. 여호와를 우상처럼 섬긴 것은 하나님의 채찍 외에는 돌이킬 길이 없었던 것이죠. 자기 백성이니까. 자녀들이니까. 그래서 하나님 스스로가 이방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하나님 스스로가 이방의 나라에 간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순종치 않고 타락한 우상을 섬기는 심령들을 깨우치는 방법은 채찍질 밖에 없는거죠. 그 채찍을 자신을 치신 것이고, 블레셋에 잡혀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 스스로 일을 하시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줍니다. 5장과 6장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은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났죠. 하나님이 가셨다 하나님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분명히 나타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절하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스스로 일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손, 주권을 의미하죠.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면 누가 막을까요. 하나님의 손이 거룩하고 복되게 움직여야 합니다. 심판의 손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는 거룩한 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 손, 주권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순종하는 길만이 사는 길이고, 손 앞에 굴복하는 것만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온전히 순종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우리는 달리 살 수 있을까요? 어떤가요. 우리는 놀라운 사건을 보면서도 순종하며 살고 있나요?

그렇지 않잖아요. 왜 그럴까요. 보면서도 똑같이 사는 우리를 볼 때 부끄럽게 느껴지죠.

이 땅에 누가 이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할 수 있을까요? 없죠.

오직 한분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향해서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온전히 순종할 수 없고, 따를 수 없는데, 우리가 그리스도께 접붙여짐으로 우리가 순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순종하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아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말씀을 아는 일에 힘쓸 뿐 아니라 나의 삶에 길이 되기위해 부단히 그 길을 따라야 합니다.

 

사는 것 이전에 아는 것이 안되요. 말씀 앞에 알고자 집중하였던 적이 얼마나 있나요? 말씀을 묵상하고 아는 일만이 삶에 시작입니다. 내가 살지 못함은 말씀으로 돌아가는거예요.

불평, 아픔이 있을 때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이 알려주고, 나의 모든 문제를 치료해주시고 길을 알려주십니다. 그 말씀으로 인하여 다시금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호와의 궤를 보면서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하나님 스스로 비참한 자리에 떨어지는거잖아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냐면 죽기까지입니다. 이것은 죄의 굴복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사랑한게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십자가에서 순종하시고 부활하셨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 길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열심을 다하여 수고하고 애써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말씀 앞에 있으면 겸손해져요. 놀랍게도 그 말씀이 힘을 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주고 치유해줍니다. 아닌 것 같을 때, 아니라고 말씀해주세요. 그런데 말씀을 떠나면 헛된 것이 나를 지배해요.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없어요. 그 때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겁니다. 말씀을 읽고, 듣는 것입니다.

프란시스쉐퍼 목사님 전기를 서평쓰면서 보았는데, 6년간 암이 걸리셨는데, 마지막 6년동안 힘쓴 일은 성경으로 돌아갑시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이게 진짜 신앙이잖아요. 성경이 우리에게 위로와 힘과 능력을 줍니다. 그 힘을 공급해줍니다. 말씀을 통해서 말이죠.

 

그러면 살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버리지 말고, 말씀을 읽지 않고 듣지 않으면 시험에 들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이 오면 갈등은 생기지만, 성령이 그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본 하나님의 손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손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신동식 목사의 구속사적 성경 연구(244) - 사무엘상[17] 정대원 2015.04.08 0 1059
다음글 신동식 목사의 구속사적 성경연구(242) - 사무엘상[15] 정대원 2015.03.02 0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