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개 | 정대원 | 2012-04-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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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거리는.. 서울에서 평양까지 3시간, 한 여자를 배달하라는 특명 김기덕 감독 작품으로, 3년의 침묵을 깨고 제작한 바로 저예산 영화이다. 가까운 거리지만 그 누구도 쉽게 오갈 수 없는 남과 북. 그러나 그 철조망을 매일같이 뚫고 이산가족의 아픔과 그리움을 전달해주는 ‘산’이라는 청년이 있다. 무장한 남과 북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비무장지대를 혈혈단신 오가는 위험한 일을 하지만 순수한 눈빛을 가진 ‘산’은 어느 날 신분을 숨긴 국정원 요원들에 의해 망명한 북한 간부 ‘남자’의 애인인 ‘인옥’을 평양에서 빼내오라는 은밀한 제안을 받는다.
산은 인옥을 데리고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면서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맞지만 그 때마다 인옥을 구해준다. 짧은 시간 함께했지만 위기를 같이 겪어낸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 그런 스토리다. (발췌)
영화를 보며 내면에 이러한 질문이 새겨진다.
'산'이라는 청년은 끝까지 한마디의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간다. 남과 북이 50여년간 대치상황에서 빗어낸 말없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남의 정책과 북의 정책 모두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펼쳐져있고, 그 어디에도 사랑은 존재치 않는다.
차라리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느니 침묵함이 낫지 않을까.
그 영화에서는 너무나 가냘픈 사랑의 꽃잎 하나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말할 수 없는 운명과 질긴 인연의 사랑. 남과 북의 대치상황에서도 사랑은 꽃피운다.
하지만 그 사랑마저 돈에 눈이 먼 자들에 의해 처참히 짓밟힌다. 북동지는 이렇게 외쳐댄다. 썩어빠진 자본주의에 기대지 않으리라. 미국의 노예가 되지 않으리라.
그들은 그토록 힘겨움을 드러낸다. 그런 북한을 향해, 남한은 총부리를 먼저 내려놓으라 한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마지막 생명줄인 그 총을 말이다. 그들에게 있어 처절한 생존인 핵을 말이다.
감독은 풍산개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준다.
그의 답은 어둠이었다.
남과 북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그저 깜깜한 어둠으로 답을 대신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답을 가졌는가.
작년, 국가론의 강의를 들었을 때, 전 통일부장관을 지내신 임동원 이사장께서 오셔서 강의를 해주신 기억이 생생하다.
그 분은 성경말씀을 제시하며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해주셨다.
네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라.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롭게 지내라.
요즘 한국정치의 화두는 "복지국가"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줄기차게 외쳐대고 있는 핵심쟁점이다.
정치권에서는 열심히 복지국가로의 실현을 꾀하지만, 국비로 충당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의세금으로 이뤄질 것이다. 무상급식은 반기지만, 자신의 호주머니가 털리는 꼴은 보기 싫어한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은 5000억이라는 거액을 사회에 환원하며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내었다.
남과 북, 성경말씀, 복지국가, 기부문화.
이 모든 것들은 마치 뒤얽힌 실타래와 같이 복잡함 그 자체이다. 하지만, 하나의 맥 안에서 흘러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샬롬.
외부적 측면에서 가정과 사회와 나라의 평화를 내부적으로는 마음의 평화를 정의가 실현되는 공간 질서, 가정에서, 사회에서의 질서를 조화, 서로 대립하지 않고 서로의 부족함과 결핍을 채워줌
샬롬을 실현할 수 있는 건, 바로 그리스도인된 내가 해야만 하는 사명이리라. 국가적 대치상황과 국가의 방향성,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의 샬롬은 바로 내가 있는 공간에서부터 시작임을 기억한다.
기독교가 답이라는 뻔한 말이 아닌, 샬롬의 본질을 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의 유일한 열쇠를 가진 자들이다.
문화를 개혁하고, 새로운 문화의 창조자로서 역할, 보편교회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샬롬이 시작되는 곳이다.
내 주위는, 샬롬이 일어나고 있는가.
내가 다니는 교회는 지역사회에 작은 나눔을 실천하려 애쓴다. 자랑하려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은혜를 나누는 것이, 빚을 갚는 일이 어찌 자랑이 되겠는가.
바로 옆에 있는 경로당에 국수를 만들어 대접해드린다. 명절 때마다 독거노인분들과 소년소녀가장집을 방문하여 작은 선물을 전한다. 때로는 지역단체에서 후원을 받은 빵들을 독거노인분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가끔은 김치를 담궈 그들에게 한 포기씩 전하기도 한다.
그럴 때, 그들의 눈망울은 늘.. 가슴을 끄덕이게 해준다. 이게 사랑이지. 이게 기독교지. 그들은 작은 빵에, 작은 나눔에,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린다. 그렇게 작은 원당은 조금씩 웃음꽃이 피어난다.
가끔은 지역주민이 수고한다고 요구르트를 건네기도 하고, 어떤 분은 정성껏 구운 군고구마를 나눠주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 안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해지고 있었다.
거창한 복지국가. 거창한 남북대화. 왜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늘 정치논리에 빠져 정작 북의 죽어가고 있는 동포들에게는 생명줄이 끊어져간다.
최소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네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라. 이 성경말씀은 북한에게만은 해당되지 않는 구절이었는가.
나 역시 북한을 향해 분노의 쓴 잔을 채운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들이 우리에게 해온 온갖 거짓말과 횡포를 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성경말씀이 그렇게 말하기에 나의 짧은 입술을 굳게 닫을 뿐이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샬롬은..바로 내 가정에서부터 출발하여, 교회가 바로 세워지고, 교회가 지역을 섬기며, 바른 목소리를 내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며, 사회의 변혁을 위해 성경말씀의 목소리를 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이 땅에 샬롬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다. 깨어있는 소수들을 사용하셔서 말이다. 반드시!
그 날을 꿈꾼다. 미래를 위한 준비가 오늘을 사는 첫걸음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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