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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플라벨 마음지키기 | 신동식 | 2015-01-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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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플라벨 마음지키기 권혜영 성도 “Well experienced heart? 잘 경험된 마음인가요?” 요즘 영어공부가 한창인 송용환 목사님께서 물었습니다. 곰곰히 책 표지를 들여다보던 남편은 “그것보다는 잘 단련된 마음이라는 뜻으로 들리네요.”라고 대답합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experience가 그런 뜻으로도 쓰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새롭게 알게된 사실 하나에 책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집니다. 게다가 이 책의 저자가 존 플라벨이라니! 몇년전 그의 책 ‘하나님의 섭리’를 읽으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기억에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이미 책을 다 읽은 양 마음이 요동칩니다. 마음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보이는 외모도 잘 지키기 어려운데 보이지 않는 내면을 지키는 일은 말할 것도 없죠. 저자도 ‘모든 마음이 본래 그리스도에게 닫혀 있고 그리스도를 완고하게 반대한다는 것은 슬프지만 분명한 사실’이라고 언급하며 쉬운 일이 아님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해서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하다면 성경에서 우리에게 ‘마음을 지키라’고 명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강력한 목소리, 복음과 성령의 하시는 내적 외적 사역의 주된 의도가 마음을 열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시는 일’이라는 말 속에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은혜가 삼위하나님으로부터 나옴을 알게됩니다. 존 플라벨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마음의 보좌에 거하시는 방식이 일종의 정복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친구처럼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시고 나는 그의 종이 될 때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셨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왕되신 그리스도께 대한 종된 자세에 대한 설교를 들으며 얼마나 하나님 앞에 방자했었던지 죄악이 죄악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자기 합리화에 빠져 마치 상사에게 결재 받을 문서를 내 생각대로 작성해서 올려놓고는 ‘알아서 결재하겠지’하는 생각으로 신경 쓰지 않았던 나를 말씀으로 책망하시던 주님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말씀으로 책망하신 주님은 내 손을 잡아 주시고 다시 나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중생하기 전 가장 악한 것이 마음이지만 중생 후에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된다는 존 플라벨의 말처럼 정결한 마음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나는 그때 다른 어떤 말씀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는 말씀을 계속 되뇌이며 어떻게 하면 청결한 마음을 가져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습니다. 고난의 때, 환난을 받을 때, 형통할 때, 두렵고 위험할 때, 궁핍할 때 등 여러 상황에서 마음을 어떻게 지키고 단련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글들은 그 때 가졌던 의문들에 많은 답을 주었습니다. 특히 ‘교회가 고난을 당할 때’ 에 대한 글을 통해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하나님의 사람에게 따르는 엄청난 이득을 숙고하라는 권면과 교회는 어떠한 환난의 물결에도 다시 부상한다는 말씀, 그리고 당신이 느끼고 염려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교회의 고난을 느끼시고 염려하시는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는 말씀으로 힘을 얻었습니다. 존 플라벨은 논의의 마지막에 외식하는 자와 성도의 차이를 언급합니다. 외식하는 자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만 성도는 하나님께서 지켜보신 다는 사실에 죄를 멀리하고 마음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죄를 죽이려고 늘 씨름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은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 책을 볼 때마다 나는 이 마음을 잘 지켜내고 있는지 죄와 싸우고 있는지 점검하곤 합니다. 이렇게 독후감이라도 남겨놓지 않는다면 책의 내용은 거의 머리 속에서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읽게 하시고 듣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이 마음을 지켜나갈 은혜의 수단들을 부지런히 사용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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