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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식 목사의 구속사적 성경연구(209) - 사사기[23] 박석화 201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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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 연구 (사사기16:1-22)

 

 

사사기 16장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삼손의 마지막 장면을 보게 됩니다. 삼손 이야기의 결말과 삼손의 몰락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삼손은 어떻게 보면 우리 시대의 모습을 잘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공룡처럼 거대해진 한국 교회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삼손 이야기는 우리 시대에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삼손의 이야기를 한국 교회와 비교해 보면 우리에게 경고로 주신 말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삼손은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실 인이었고,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힘과 권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한기총이라는 단체가 자신들이 해지한 이단에 대해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서로 고소하지 않는 것이 성경의 원칙인데 자신이 하는 행위가 얼마나 사악한지 모르고 자신의 권력과 힘에 사로잡혀 하는 일인 것입니다. 삼손과 같이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손의 몰락을 보시면 이렇게 거만하고 권력을 자랑하는 자의 마지막 모습이 얼마나 비참한지 보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교만하고 가진 것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게 되면 우리도 삼손과 같이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삼손의 어떠한 모습에 우리에게 모델이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1-3절은 가사의 한 기생의 집에서 머물다가 당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고, 4-17절까지는 들릴라와의 관계를 펼쳐지고, 18-22절은 삼손의 비참함을 보게 됩니다. 삼손은 들릴라의 세 번의 요청은 거절했지만, 네 번째 요청에 대해서 삼손은 반응하였고, 블레셋 사람에게 잡혀가게 된 것이 오늘 내용입니다.

 

첫 번째 삼손의 문제점은 반복적인 죄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나실 인으로 구별 받은 백성임에도 그는 이방 여인을 사랑하는 반복적인 죄에 빠집니다. 가사의 기생에게 빠지고 들릴라에게 빠집니다. 반복적인 죄에 빠져있는 삼손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측면에서 간음의 죄에 빠져 있는 것을 봅니다. 삼손이 계속해서 반복적인 죄에서 회계하지 않을 때 파멸 밖에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반복적인 죄는 비참한 결말만이 주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도로 가지 않는 길을 결국 파멸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이 정해진 길로 가지 않으면 마지막은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 건져내셔서 빛의 자녀로 살게 하셨는데, 빛의 자녀인 우리가 어두움의 길로 가려 할 때 하나님은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나실 인이었던 삼손은 구별되게 살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지만, 나실 인으로서 바르게 살지 못할 때 그가 많은 재능과 힘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놓으니 그가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가진 것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도로 가지 않는 신앙,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지 않는 성도의 신앙은 파멸밖에 없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딤나의 여인 사건과 가사에서 기생 사건, 이 때 마다 주위에서 블레셋 사람이 삼손을 죽이려고 합니다. 들릴라와 사랑에 빠졌을 때 삼손을 죽이려고 블레셋 사람이 매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장면에서 삼손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삼손이 가고 있는 길이 옳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사인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위기를 막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이 가는 길이 바른 길이 아니라고 막음에도 삼손은 죄에 빠져 있어 이를 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중요한 것은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자다가 깰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깨어난 눈이 되지 않고 잠을 자고 있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어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끊임없는 사랑의 신호를 줍니다. 때로는 징계, 충고, 권면 등 다양한 모습으로 주십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말씀하시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돌이킵니다. 깨어있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회개의 모습이 나타나는 데, 영적으로 까막눈이 되어 있으면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삼손의 모습에 우리는 이 사실을 우리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위기에 대해서 잘 나가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삼손의 모습에 대해서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지 않고 왜곡된 길로 갈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신호가 있습니다. 먼저는 공동체의 소리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단에게 말하기를 한 사람이 가서 말하고, 두 사람이 말하고, 장로들이 말하고, 교회가 말하라고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내버려두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4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회를 가지고 찾아오시는데, 영적으로 살아있으면 우리가 그 기회를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어있으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삼손은 나실 인이었지만 영적으로 까막눈이기에 죄악의 길에서 헤매다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리에 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도는 바른 길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자라도 잘못된 길로 가면 영광이 아니라 파멸의 원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부와 명예와 높은 지위를 얻는다고 할지라도 잘못된 길에서 얻는 것이라면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영광이 아니라 형벌입니다. 이방 여인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삼손은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큰 징계를 받았습니다. 삼손은 잡혀갈 뿐만 아니라 눈이 뽑혀갔습니다. 그는 영적으로도 보지 못하고, 육적으로도 보지 못합니다. 나중에는 육으로 볼 수 없을 때 영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질 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어도 가지지 않을 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측면에서는 가지고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나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은 충분한 것을 주신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삼손을 통해 이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한국 교회가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한국 교회가 무너지는 모든 소리 가운데 하나는 도덕적인 문제가 던져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도덕적으로 건강하라고 돌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특별히 권력을 가진 자들아 도덕적으로 살라고 돌들이 외치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바른 말을 전하지 않으면 돌들이 외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바르게 새겨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삼손의 모습 가운데 보는 것은 죄의 유혹이 끈질기다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를 파면에 이르게 하기 위해 끈질기게 다가옵니다. 죄는 삶을 피곤하게 합니다. 죄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지 않습니다. 피곤함을 가지게 됩니다. 들릴라의 유혹은 대단하고 끊질 깁니다.

 

(잠 23:27) 대저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한 번 유혹에 빠지면 끝이 보이지 않는 구렁 속에 든 것과 같습니다. 죄는 끊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 속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죄는 죄를 낳습니다. 죄는 파멸할 때까지 끊임없이 미혹합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들릴라의 모습을 봅니다. 나실 인으로 지켜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삼손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약속을 끊으라는 것입니다. 죄가 하는 일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끊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 전까지 죄는 우리를 하나님과의 약속을 끊으라고 미혹합니다. 삼손은 지금 이방 여인인 들릴라에게 걸려든 것입니다. 이방여인인 들릴라가 삼손을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들릴라는 이전의 여인과 달랐습니다. 가사의 여인과 딤나의 여인보다 더 독한 것입니다. 들릴라에 대한 표현은 사랑하였더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 여인을 사랑하였습니다. 마음을 온전히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빼앗기자 여인의 감언이설에 휘둘리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영적으로 살아있는 모습이 있으니 들릴라를 조금씩 피합니다. 이것은 드릴라와 삼손이 영적인 전쟁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말해줄 수 없고, 하나님의 관계를 알기에 문을 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이 점점 지고 있는 것을 본문이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단호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서 떠나자 조금씩 이방여인으로 가는 것을 봅니다. 들릴라의 유혹은 반복해서 계속 다가오는 것을 봅니다.

 

(삿 16: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당신이 이 세 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삼손의 마음을 빼앗는 표현을 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며 희롱한다고 표현입니다. 삼손이 들릴라를 희롱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갈등 가운데 있는데 들릴라가 삼손의 마음을 정확하게 찌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들릴라는 희롱한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인격적으로 비참한 상태에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으면 반응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삿 16: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들릴라는 날마다 삼손을 재촉하였습니다. 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반복해서 듣는다고 생각하여 보십시오. 삼손은 죽을 지경에 걸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있는데 평안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위기 가운데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죽을 지경일 때 하나님께 가는 길이 사는 것인데, 죄의 유혹에 빠지면 하나님께 가지 않았습니다. 간음, 맘몬, 권력에 사로잡히면 하나님께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가면 살지만, 돈을 붙잡고 권력을 붙잡고, 사람을 붙잡은 것입니다.

 

(삿 16:17)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허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그는 비로소 진실 된 마음을 이방여인에게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습니다. 비참한 내용입니다. 나실 인이었던 삼손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가면 마음이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삼손이 비참한 결과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평안을 유지할 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떠난 마음을 비참하였습니다. 결국 삼손의 머리가 밀리게 됩니다. 힘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 왔습니다.

 

(삿 16:20)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들릴라에게 가는 순간 하나님이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능력은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비참함입니다.

 

(삿 16:21)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이는 눈을 빼었으니 어디로 갈 곳 없이 도는 것입니다. 깜깜한 상태에서 계속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눈이 빼어지는 결과를 보게 된 것입니다. 삼손의 능력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을 때 얻는 것입니다. 삼손은 자신의 능력이 머리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실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머리카락은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에 어떤 세력과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두려움이 없고,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떠나면 평안이 소망이 없습니다. 절망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그리스도인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외형은 화려해도 하나님이 떠난 교회를 보십시오. 온갖 부정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아름다움은 비참함과 부끄러움만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알아봅니다. 영적인 눈으로 보면 얼마나 추악한 가를 알게 됩니다. 한국 교회도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떠나면 벌레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시편 기자의 표현으로 인하여 구더기만도 못한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구더기와 같은 존재지만 거룩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우리는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떠나면 벌레 같은 존재, 죄인 중의 괴수가 됩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떠나자 비참한 자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삼손이 왜 떠났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을 때 죄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잠 7: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잠 7:2)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잠 7:3)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 7:4)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잠 7:5)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말씀만이 나에게 생명이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방 여인에게 말씀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말씀을 잊어버려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적 세속화를 잘 살펴야 합니다. 영적 세속화는 육신에 거하게 됩니다.

 

(롬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오늘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삼손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삼손과 같이 어리석은 자리에 빠지게 되면, 많이 받은 은사가 비참한 자리에게 가게 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을 떠나지 말고, 기도에 떠나지 말고, 성령에 사로잡혀, 날마다 이 세상의 유혹에 대해서 눈을 부릅뜨고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예비하신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 주신 것을 풍성히 누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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