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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식 목사의 구속사적 성경연구(238) - 사무엘상[11] 정대원 201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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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연구 (사무엘상 2장 18~21절)

 

사무엘상 2장 (8)

 

 

오늘의 본문 말씀은 12절-17절까지와 대조되는 말씀입니다. 12-17절을 봅시다.

홉니와 비느하스를 가리켜서 불량자라고 일컫습니다. 제사장의 아들이었지만 불경건한 자였습니다. 이 사실은 누구도 예외없이 불량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게되면, 불량자가 되지 않는 길에 대해 한 줄기 빛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사무엘의 모습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무엘은 홉니와 비느하스가 같은 곳에 살았습니다. 사무엘은 어리기 했지만 죄를 지을 수 있고 불량자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대단히 악한 자리여서, 사무엘은 대단히 선한 자리에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동일한 자리에 있었지만 다른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은총을 입은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사무엘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 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세 번이나 반복되는 단어가 있는데요. 여호와 앞에서 라는 단어입니다.

18절, 21절, 26절에 나오죠.

 

여호와와 사람들 앞에서 은총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갖 죄악이 난무하는 곳입니다. 역시 불량자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여호와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라는 의미는 여호와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홉니와 비느하스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직분적으로는 하나님을 대면하였지만,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서 13절 봅시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직분을 가지고 잘 감당하는 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평가하셨습니다. 12절 봅시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똑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한 사람은 여호와를 아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여호와 앞에서, 대면하여 사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무엘은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가정예배에 나타나는 열매들이죠. 엘가나와 한나가 늘 올라올 때마다 에봇을 지어줍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났습니다. 늘 하나님을 의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은 불량자가 될 확률이 적습니다. 여호와 앞에 있지 않는 자는 불신자들이죠. 이들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그렇게 행동합니다.

교회안에서 살지만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불량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 욕하는데 혼자 욕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이런 상황 가운데 정직하게 사는 것, 이것은 만만치 않은 자의 모습인 것이죠.

홉니와 비느하스는 장성한 자들이고, 사무엘은 어린 나이입니다. 사람들은 다 보고 자랍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되는 것이죠. 하는대로 삽니다. 이런 가운데서 쉽게 물들 수 있고, 쉽게 불량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기는 자리에 서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참 힘듭니다.

 

우리 역시 여호와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역시 여호와 앞에 서지 않으면 다 남 탓하게 됩니다. 사무엘을 보면서 느끼는 건 여호와 앞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죽기까지 그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예수 이야기하지 말라. 그 때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사도행전 4장 18-22절

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하나님 앞에서!

베드로는 목숨을 내 놓은 것입니다. 제가 아는 친구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사는 것도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선교사님이 귀국했습니다. 선교사님이 더 힘들고 어려운거예요.

이 선교사님이 갑자기 30년을 같이 지냈는데도 옷 한 벌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는거예요.

이 목사님은 본인을 생각하니까 거의 허덕이고있는데, 그 선교사님 얘기를 듣고 카드를 꺼내서 긁었습니다. 정지상태인데 예수님께 옥합을 바쳤던 심정으로 드립니다. 긁었는데 결제되었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옥합을 드릴 수 있을까. 친구에게 옷 한 벌 못 사주는 사람이 옥합을 깰 수 있을까. 내 상황은 하면 안되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 참 멋있다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였다. 그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리라.

모든 일이든 행동이든, 말이든 하나님 앞에서 하고 있는가.

믿음의 선배들은 코람데오.라고 외쳤습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기위함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우리 영혼을 멍들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예배하는 일 역시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면 사람이 알아줍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주님 역시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두 번째는 사무엘은 영적인 가르침에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회개와 권고를 가볍게 여기고 버렸고, 특별히 영적인 가장인 아버지의 권고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권위를 다 주셨습니다.

그 권위의 능력은 말씀을 전하는 일에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이 그 집안의 영적인 문제를 이끌어가게끔 하신 것입니다. 그 권위가 말씀에 순종하느냐에 따라 있는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엘리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엘가나와 한나는 에봇인 제사장들이 입는 옷을 주었습니다. 자랄만큼을 생각해서 짜온 것입니다. 매년 짰습니다. 매년 엄마가 제사장이 된 사무엘의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에봇은 의미가 있는 것이죠. 아무나 입는게 아니죠. 옷은 그 의미가 있어요. 엄청난 권위를 가진거죠. 제사장을 보여주는게 에봇이예요. 부모가 옷을 왜 가져왔을까요? 엄마의 마음을 봅시다.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옷을 짓지 않았을까요? 성경에는 내용이 없지만,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엘리가 뭐라고 하죠?

20절

엘리가 엘가나와 그 아내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그 집으로 돌아가매

 

한나가 얼마나 신실하고 정직하게 이야기했는지 엘리는 알았습니다. 그 영적 부모를 통해 여호와 앞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영적인 지도자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런 부모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부모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온전히 순종한 분이었습니다.

제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함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는 3일만에 부활로서 그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사무엘과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영적인 가르침에 순종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영적인 젖줄을 계속해서 공급해주는 것이 먼저된 자의 일입니다.

 

여러분.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과 부모가 주어야 할 것을 분명히 압니다. 아이들이 좋아하지만 줄 수 없는 것들 많이 있습니다. 아토피가 걸린 아이에게 달걀 못 줍니다.

아이입장에서는 왜 안 주나?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줄 수 없죠. 주면 죽으니까요.

 

영적인 젖줄 부모의 역할은 살리는 것을 주어야 합니다.

딤후 3장에는 자기의 귀를 간지럽게 하는 스승을 좇는다고 말합니다. 내 기분에 맞는 설교를 기다리고 그것만 기억납니다. 설교의 내용이 아니라, 내 마음에 걸리는 것만 찾죠.

은혜가 안되면 쳐내야 합니다. 은혜를 누리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무엘은 어머니로부터 영적인 것들을 계속 공급받았습니다. 생명을 위하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무엘은 순종하였습니다. 아이가 나중에 크면 압니다. 아이가 언제 알까요? 제가 보기엔 중3되니까 조금 이야기하더라고요. 16년정도 지나야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명을 주었구나 라는 것을 알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나 반드시 알게 됩니다.

사무엘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주신 것은 21절 봅시다.

세 아들과 두 딸을 얻었습니다. 철저하게 영적 소명을 감당한 한나가 얻은 복입니다. 이렇게 사무엘은 육적 부모인 한나와 영적 부모인 엘리에게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이 그가 살도록 이끈 원동력입니다.

이런 시대에 육적 부모의 가르침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영적인 권위까지 가졌으니 더욱 귀합니다. 동시에 여러분을 가르치는 영적인 선생에 대한 순종도 중요합니다. 진리 안에서 순종하면 혼탁한 세상 가운데에서 죄악에 빠지지 않습니다. 모든 영적인 가르침에 잘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말씀을 함께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26절 봅시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눅 2:52절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공통점은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가르침에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과 존귀함을 받는 것입니다.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쉽지 않죠.

이런 세상 가운데 경건의 삶을 누릴까.

사무엘의 모습을 통해 여호와 앞에서, 영적인 가르침에 순종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다면 혼탁한 세상 가운데 이길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안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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