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식 목사의 구속사적 성경연구(239) - 사무엘상[12] | 정대원 | 2015-01-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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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연구 (사무엘상 2장 27~36절)
사무엘상 2장 (9)
오늘은 사무엘상 2장 마지막 부분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엔 홉니와 비느하스와 대조되는 사무엘의 어린시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무엘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라는 고백입니다. 코람데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반면에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하나님의 결론을 말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결론은 하나님의 공의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엘리 제사장에게 나타나서 말해줍니다. 그 말씀은 너무나도 무서운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하나님을 멸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단호하십니다. 거꾸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 역시 명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멸시여기는 자에 대해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익명의 선지자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것인지, 마음이 어떠한지, 뜻이 무엇인지 설명해 줍니다. 선지자는 말합니다. 네가 어떻게 제사장이 되었느냐.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엘 리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여 세웠음을 이야기합니다. 27-28절을 봅시다. 27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28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27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켰습니다. 28절 이스라엘 지파 중 한 지파에게 에봇을 입혔다. 그리고 생명도 너에게 주었고, 직분도 주었고, 물질도 내가 주었다. 엘리와 그의 집안이 한 일이 없고 하나님께서 세웠다 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택하지 않았느냐. 나의 일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지 않았느냐. 이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너한테 베풀어준 은혜가 아니냐.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것, 모두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대단한 힘이 있어서 하는게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드러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9절 봅시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그러나 엘리의 모습에는 그러한 모습이 없었습니다. 책망의 3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 드릴 재물과 예물을 밟은 것입니다. 두 번째,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겼다. 이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실지 두렵습니다. 우리 시대가 전부 다 자녀에 대한 소중함과 애틋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보다 앞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회자들의 모습 가운데 그러한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목숨 거는 것을 봅니다. 집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선교사님들은 두 말할 필요 없고요. 이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 부모가 선교사고 목사지, 이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 라고 하면서 합리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생각해봅니다. 정말로 오늘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있지 않느냐. 라는 질문을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은 이 부분에 있어서 분명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께 드릴 예물로 스스로 살쪘다 라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 입장에서 이 말을 들었을 때, 섬뜩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들었다면 너무 무서워서 눈물도 안 날 것 같습니다. 책망 3가지를 살펴봅시다.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멸시한 것입니다. 밟는다는 것은 가볍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하찮은 것을 밟고 필요없는 것을 밟죠. 그 제사를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아주 하찮게 여겼습니다. 예배를 그렇게 드릴 수 있습니다. 영국속담에 익숙하면 무시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매번 드리는 예배인데.. 이것이 예배를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매 시간 간절한 마음으로 주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일날 복되고 아름다운 시간을 준비하려면 매일 가정예배, 말씀 묵상, 기도가 이루어질 때, 주일예배가 거룩하게 주어집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를 받아가야 합니다. 은혜와 진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가볍게 여기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회계받을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예배할 때,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 감정과 마음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과 말씀에 근거하여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이 자세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산 제사로 드리라. 말합니다. 죽은 것은 밟을 수 있습니다. 산 채로 드려야 합니다. 두 번째, 우상숭배를 이야기합니다. 너 왜 우상숭배하느냐. 목사를 향하여 너 왜 우상숭배하느냐. 질문하는 것입니다. 나를 멸시하였다 라고 말합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잘못된 모습을 아버지께 묻고 있습니다. 왜 네 아들을 더 중히 여기느냐. 저는 이러한 일들을 잘 할 수 있는 것이 가정예배라고 생각합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엘리로부터 말씀을 배웠다면 이런 책망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다 만인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씀을 전하는 특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책망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자신과 자녀가 살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을 책망합니다. 십계명을 어긴 것이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을 자신이 다 갈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땅에서 다 영광을 누리면 천국에서 받을 영광이 어디 있겠느냐. 너 다 누리지 않았느냐. 엘리는 이 일을 한 것입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 것입니다. 서로가 함께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면 보고계시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가볍게, 우상숭배, 도적질 하는 모습은 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려면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에 생각들이 우리를 사로잡아 버립니다. 그리고 멸시의 자리로 내몰아 버립니다. 두 번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목사와 장로, 집사와 같은 직분자들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향해 이야기합니다. 엘리 집에 노인이 없을 것이다. 장수는 복인데, 하나님의 복이 없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또한, 엘리가문은 환난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심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젊은이가 일찍 죽을 것이고,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을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건의 훈련에 힘을 써야 합니다. 딤전 4장 8절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우리가 경건의 훈련을 하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약속이 주어집니다. 직분자로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날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남은 삶동안 하나님 앞에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의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겨 주십니다. 30절 말씀 봅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여기서의 핵심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겠다는 것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 이것은 외식적 신앙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 앞에 가 있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내 중심이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때, 하나님은 자신을 존중히 여긴다고 인정해주십니다. 나는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느니라.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께 떠나있으면 안됩니다. 여러분의 중심은 어떤가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이 존중히 여겨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35절 봅시다.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가로되 청하노니 내게 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나로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행하는 자를 말합니다. 사무엘을 의미합니다. 사무엘이 여기에 합한 자였습니다. 길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얘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아버지여 원하신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긴다는 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내 뜻은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인은 죄의 길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죄의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잘 아시거든요.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게 복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뜻을 기다리기 보다는 내 마음에 원하는대로 합니다. 자기 소견대로 하니까 엉터리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그 영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나를 존중히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해 견고한 집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시편 112편 1-3절 봅시다.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3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다. 후대가 견고하다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이런 선물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멸시하면 경멸히 여기십니다. 엘리에게 주었던 심판은 나중에 완벽하게 다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의 후대는 경멸당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 후대도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 존중히 여김을 받지만, 그 후대가 하나님을 멸시하면 멸시를 받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께서 당시에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서 죽게됩니다. 승승장구하였던 것은 빌라도였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예수님을 죽이는데 조력하였던 가이사의 가문들을 보면, 비참한 결과를 보게됩니다. 가이사는 권력을 누렸지만, 가이사의 아들들은 다른 아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미쳐버렸고 장님, 물에 빠져 죽고 목이 졸려 죽고 다섯명은 암살, 여덟명은 전사했습니다. 줄리아 황제는 말했습니다. “갈리리인들이여 그대들이 승리하였도다.” 당대에는 승리자같아 보였지만, 뒤의 역사에서 진정한 승리자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예배를 가볍게, 우상숭배, 도적질 하는 자리에 서면 안되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겨주시고 그의 집을 세워주시고, 그것은 말씀으로 섭니다. 이것은 주일예배와 가정예배에 온전히 빠져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건물이 세워지는 게 아니라, 건강한 신앙고백하는 자들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앞에 잘 묵상하고 생각하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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