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조의 시작 | 운영자 | 2022-04-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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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창조의 시작 코로나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증상, 가벼운 통증, 찢어지는 인후통, 극심한 고통, 죽음에 이르는 위중증등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위증증 전단계인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면서 코로나를 대면했습니다. 며칠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호흡하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래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기도가 바뀝니다. 주의 뜻대로 인도하여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뜻외에는 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잠을 자고 난 뒤에 큰 위기가 찾아왔고,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산소 포화도가 91에서 95 정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3주간의 혈투가 진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들어 창문을 열고 밖을 보는데 목련이 만개하였습니다. 새 삶의 시작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을 돌아보고, 커피를 먹었습니다.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재창조의 삶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 한 후에 인류는 절망 속에 살았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인류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동서양이 따로 없습니다. 죽음을 이기고자 하는 인류의 열망은 계속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겨도 인류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집트, 중국등에 산재한 엄청난 죽음의 무덤이 보여주는 것은 죽음이라는 절망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죽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첫 창조에 속한 인류의 현실입니다. 범죄하고 죽음의 절망 가운데 절규하는 인류는 어떤 소망도 없습니다. 오직 죽음을 맞이할 뿐입니다. 문제는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더 죽음을 이기고 싶은 것입니다. 인류의 상태는 이제 비참함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 하나님은 사랑을 베풀기를 작정하셨습니다. 죽음의 원인을 제거하고 영생을 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창조주요 구속주 만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분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감당하심입니다. 이를 위하여 성자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육신은 인류 구원의 표징입니다. 그리고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마침내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첫 창조가 끝났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의탁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십자가는 부활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삼일 동안 머무시고, 삼일 후에 육체와 영이 결합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심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첫 창조의 종말을 선언하고 재창조의 시작을 알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재창조의 시간이 왔습니다. 부활 이후 온 인류는 재창조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부활의 주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더 이상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 15:16-18)”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재창조의 삶을 의미합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15:47)”. 부할의 사람은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하늘의 형상을 입은 사람입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은 하늘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창조의 삶의 기준은 말씀이고, 말씀의 실체는 사랑입니다. 부활을 통하여 주님은 인류가 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실체를 교회를 통하여 제시하였습니다. 예수 믿음은 재창조의 시대를 인지하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것은 재창조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잘 할 수 있게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교회는 재창조의 기관이며, 부활의 증인입니다. 다시 살아난 기쁨을 만끽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부활의 증거이자, 부활을 사는 것이 무엇임을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부활을 안다면 부활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나 됨이 부활의 주님께 있습니다. 예수 부활하셨네. (신동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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