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불이익 | 신동식 | 2022-07-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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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과 불이익
우리 시대 최고의 화두는 “공정”입니다. 공정이 이렇게 중요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름”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공평하고 올바름을 아름답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치우친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 비판을 합니다. 최근에 끝난 대선에서고 공정이 가장 큰 주제였습니다. 물론 누가 더 공정하냐는 싸움이 과열되어 서로의 흠집을 끄집어내려는 부정적 방식으로 치달려서 아주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을 향하여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싶고, 공정한 사람은 퇴출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였습니다. 특별히 자기 노력이 아니라 부모 기회를 사용한다든지, 다른 이의 손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도움을 주게 하는 것에 대하여 격렬하게 저항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공정의 반대는 불공정이고, 공의의 반대는 불의입니다. 의심할 수 없는 생각입니다. 공정을 외친 것은 불공정 때문이고, 불의함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전혀 다른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공정의 반대는 불이익이라 말합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냐 안 되냐에 따라 공정과 불공정이 달라집니다. 공의와 불의가 정의됩니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합당하는지 하지 않는지가 기준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안 되는지에 따라서 행동합니다. 눈앞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으면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 해도 다른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장차 나에게 다가올 상황에 따라서 취하는 태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취업에 불이익이 되면 부모 기회는 엄청난 불의가 됩니다. 세상이 떠나가든 저항을 합니다. 반면에 자신의 취업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부모 기회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합니다. 그러므로 공정은 철저하게 이기적 기회주의가 되어버렸습니다. 공정을 말할 때 누구의 공정인지, 어떤 공정인지를 물어야 할 상황입니다. 저는 정치인을 뽑을 때 가지고 있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전과 전력을 봅니다. 그 가운데 음주 운전 전과를 봅니다. 그 후보는 후 순위로 밀려납니다. 법을 만드는 이가 법을 어길 뿐 아니라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는 것은 불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불의는 도덕적이고 법적인 탈선을 가짐을 의미합니다. 정의로움이 없는 사람입니다. 공평하고 올바름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준을 해체하는 다원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명제와 개념보다는 이야기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많이 후퇴하였습니다. 이것은 기준이 모호해지고 해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흐름 속에 공정 역시 그 기준이 해체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유익이 되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공정합니다. 그러나 불 이익이 된다면 그것은 불의가 됩니다. 여기에는 사단의 달콤한 미혹이 있습니다. 기초를 없애려는 충분한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도덕이 불의입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든 되지 않든 약속된 법질서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불의입니다. 불의에 동조하는 것은 불의자가 되는 길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지 않으면 부패와 혼돈이 만연된 사회를 만듭니다. 때에 따라 의의 기준이 달라진다면 끔찍한 현실이 도래합니다. 성경은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백성이 살아야 할 삶의 규범으로 율법을 주셨습니다. 시민법과 의식법은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도덕법으로서의 십계명은 더욱 분명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으로 구원을 얻지 않지만, 율법은 삶의 규범으로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도 율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율법을 통하여 자신과 죄의 실체를 정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정과 공의의 반대를 자신의 불이익이라고 말하는 세대를 향하여 불의와 불공정이 반대임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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