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란 무엇인가? (2) | 박석화 | 2008-03-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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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란 무엇인가? (2)
칭의로 인하여 입적된 자를 우리는 양자라고 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모두가 양자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반드시, 칭의받은 사람만이 양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법정적으로 의롭게 된 자만이 하나님의 양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주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모든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양자는 먼저 하나님에 의하여 양자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는 말씀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양자는 사람 자신이 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양자로 삼아주셔야, 양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양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임으로 됩니다. 이는 갈라디아서 4장 4~5절 말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에서 알 수 있습니다. 즉 우리로 양자가 되는 명분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양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입니다. 요한일서 3장 1절에서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에서 알 수 있습니다. 진노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얻게 된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양자된 자에게 주어지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어느누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앞의 사실에 의하여 자년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하셨고, 누가복음 12장 32절에서는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를 묵상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이 우리의 삶을 든든하게 만듭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함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이는 로마서 8장 15절 "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라는 말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넷째, 우리는 양자가 됨으로 하나님의 복이 주어집니다. 로마서 8장 17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와 갈라디아서 4장 6절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로서 복을 누리며, 또한 그 아들의 영, 즉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냄을 받는 영적인 복도 누리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자녀이기 징계를 받습니다. 이는 히브리서 12장 5~11절까지의 말씀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 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있지 않는데, 아무일도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징계를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양자가 된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 내려놓음은 우리가 내려놓기 때문에, 복을 누리기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양자가 된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다 할 지라도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려놓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 시대 가운데 있는 자본주의식의 내려놓음에 대해 우리는 경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더 가까이 가도록 매일 나아가야 합니다. 이 내려놓음은 어느 한 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나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는 참 다운 내려놓음 행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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