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연구(6) - 창세기[3] | 박석화 | 2008-10-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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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 연구(창세기 2:4~4:26) 천지 창조의 계보 지난주에는 천지 창조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에덴동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언약의 역사의 시작됨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셨으며,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는 ‘심히 좋았더라.’ 라고 하신 것을 통해서 볼 때에 에덴동산은 인간이 살기에, 최적의 좋은 장소입니다. 거기에는 특별히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식물들이 있었고, 동산 중앙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가 존재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4개의 큰 강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강이 흘렀다는 것은 모든 생물들을 지키고 보존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명수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에덴동산의 모습입니다. 에덴동산을 왜 하나님께서 만드셨을까요?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교재하기 위하여 준비된 장소입니다. 최적의 장소로 만들어 주신 장소 입니다. 그리고 모든 생물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말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창세기 2:17절 말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는 하는 일을 경작하는 일, 즉 노동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노동은 창조 때부터 하였습니다. 노동자체는 타락의 부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고,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경고를 주셨습니다. 이 명령과 경고를 주신 이유는 이 명령을 지키고 순종하면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이것을 이용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켰고, 타락이라는 비참한 결과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명령을 주신 후에 돕는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베필을 주셨습니다.(창 2:24) 그리고 아담은 하와를 보고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창2:23)고 첫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낙원인 에덴동산에서는 최고의 아름다운 모습만 있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오신 후에 노래가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고 신랑과 신부를 맞이할 때 부르는 노래를 부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속의 역사에 있어서 창조의 시작과 구속의 끝의 유사성을 볼 수 있습니다. 창조의 아름다운 모습의 희미한 모습은 완성된 하나님나라에서는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2)인간의 타락 타락으로 말미암은 두 가지 현상. - 창세기 3장 첫째, 낙원이 사라지고, 둘째 조화가 깨어졌습니다. 여인이 사단의 꾀임에 의해 죄를 지었고, 아담 또한 죄를 지어서 타락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낙원이 사라지고, 조화가 깨집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조화가 깨집니다.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깨집니다. 사람과 하나님 관계가 깨집니다. 자신과 자신과의 관계가 깨집니다.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이 깨어진 관계의 증거로 아담이 죄의 원인을 하와에게 돌립니다. 둘째로 창세기 3장은 인간의 타락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함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동산이 지복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고 불순종으로 인해 지복의 상태가 아니라 비참한 상태에 떨어졌습니다. 간교한 뱀을 통해 사단은 하와를 유혹하고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타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각자 각자에게 임하였습니다. 아담에게, 하와에게, 뱀에게 각각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에서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는 자와 어기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에 내린 심판 아담은 땀을 흘리고 고생게 되며 하와는 잉태하는 고통을 뱀 배로 다니면 종신토록 흙을 먹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들에 대하여 심판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 후 새로운 존재를 만든다던지, 소멸시키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있던 모습에서 더 비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전보다 처지가 심해짐. 똑같이 노동하였는데, 노동의 처지가 즐거움에서 고생과 아픔이 겸하여 졌습니다. 왜곡된 상태는 고통에 고통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에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아담과 하와는 생명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전에는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었는데, 생명의 지배하에 있게 된 것입니다. 불멸성이 타락으로 인해 생명의 지배를 신세가 된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있어서 차서가 주어집니다. 하와는 창조 시 돕는 배필로 지어졌습니다. 아담은 기뻐서 하와를 향해 뼈중에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에는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왜냐면, 여자가 먼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고전 11:3은 이러한 모습을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이 말하는 것처럼 남녀평등을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의 관점에서는 남녀는 평등합니다. 그러나 남녀간에는 신체적 차이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차서가 있는데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고 여자는 남자의 말에 복종하는 것이고, 노엽게 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가 남자의 역할을 할 때에가 온전해 집니다. 이 차서는 남자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때 합당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박탈당합니다. 평등과 차이와 차서를 구분하여서 보아야 합니다. 인류의 타락 후 하나님의 심판은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속에게 적용됩니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대표성의 원리에 따라서 후에 후손에게 이루어 질 집니다. 왜 내가?? 먹지 않았는데 내가 그 심판아래 있어야 하는가? 라고 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정하신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은 어두움, 추함, 더러움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류를 통하여 새로운 소망의 빛을 주셨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3:15통해서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약속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이 없앨 것이고, 새로운 소망을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창세기 3:15절 말씀은 메시아에 대한 약속인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류는 타락한 순간부터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올 때까지 뱀의 후손과 우리와 대립관계에 있을 거라는 거지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에덴동산에 내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신 이유는 영원토록 불행하도록 살도록 살게 하기 위함이 아님입니다.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특별히 약속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름 가운데 알려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의 단어는 엘로힘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엘로힘이라는 단어의 뜻은 전능자, 창조자, 섭리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4절 야훼라고 표현합니다. 언약백성과 특별한 관계가 있음을 알려줄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1장의 엘로힘은 창조주, 전능하신 하나님을 뜻하는 말이고, 창세기 2장 4절 야훼라는 말은 언약백성과 특별한 관계를 알려주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엘로힘이라고 쓸때는 주로 전능자, 섭리하시는 분,창조자라는 뜻을 쓰이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 체결 시에는 야훼라고 말합니다. 구속하실 하나님이라 할 때는 야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름을 통하여 구속하실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후 무화과 나뭇잎이 아니라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 이는 동물의 죽음을 말하며, 누군가 희생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동물의 희생을 통한 옷을 입히신 것이입니다. 이 옷은 평생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즉시 죽이시지 아니하시고 생명을 유예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모습입니다. 4장에는 아담의 첫 가정이 자녀들이 나타납니다. 아담의 자녀 가인, 아벨, 셋이 나타납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하나님의 가정의 모습을 이들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가인과 아벨은 아담에게 잘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믿음으로 부모로부터 받은 믿음의 유산으로 경배하지 않았고, 아벨은 부모로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으로 예배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인 예배 받으시지 않고, 아벨 예배는 받으셨습니다. 그러자 가인 아벨 죽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징계를 주십니다. 그리고 가인의 자손들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뱀의 후손으로 나타납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갑니다. 가인의 후손의 삶의 소망과 희망을 문화를 통해서 위로와 기쁨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들의 문화의 개발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 되신 셋을 선물로 주시고 셋은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셋 때에 이르러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가인의 후손은 하나님을 배재하고 문화를 통해 위로 받았습니다. 셋의 자손을 하나님을 통해 위로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셋의 자손은 문화개발을 하지 말아야 하느냐? 아닙니다. 이는 기준의 중심이 어디 있었는가? 를 말해줍니다. 가인 자체는 문화 자체에 그 마음의 중심이 있었지만, 셋의 자손은 문화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에 그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창세기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것을 주셨는데..거부할 때 나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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