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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연구(14) - 창세기[11] 박석화 2009-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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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성경연구 - 17:1~19:38)

 

데라의 족보

 

 

  창세기 17~19장 까지는 은혜와 심판에 대한 가르침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16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사라와 하갈의 갈등으로 아브라함 집안이 문제가 일으킨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17장에서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 다시 언약을 체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 하나님은 언약을 재확인 시켜 주십니다.

  17장에서 아브라함은 빨리 후사를 만들어서 후손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이 눈에 보이지 않아 답답해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내 눈에 보이는 환경에서는 잘 해 나아가지만,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는 많이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 불안한 사람은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하였습니다.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고, 그래서 하갈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후사로 삼으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후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 때 완전히 행하라고 하며, 열국의 아비가 되며,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만들어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가야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에 대해서 후퇴하거나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한 번도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고, 변경된 적이 없고, 늘 일관된 모습을 가집니다. 변하는 것은 우리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자신의 몸 상태로 볼 때는 소망이 없지만, 하나님의 소망은 아직 유효하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 때 받은 언약이 눈에 보이지 않자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루고자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은 하나님의 방법대로진행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2.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개명시켜 줍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하나님은 개명시켜 주십니다. 이름의 뜻은 아브라함은 열국의 어미, 사라는 열국의 어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름을 바꾸어 주심으로 언약을 확인 시켜 주셨습니다.

 

3. 언약의 징표를 줍니다.

  이때까지는 언약을 주었지만, 징표를 주지 않았습니다. ‘너는 떠나라. 너는 복의 근원일 될 것이다.’ 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 하셨지만, 징표는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만이 이름이 개명됨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확인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의 징표를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이방에도 할례가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할례는 땅과 후손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약속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할례는 여호와의 신실하심, 언약이 성취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증거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천국을 상속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약속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같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천국을 약속을 받은 자 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우리와 너무 멀리 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우리는 미신적이고 습관적인 모습으로 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약속을 재확인하여야 합니다. 이는 주일날 말씀의 선포를 통해 언약을 재확인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그냥 우리는 사람이었지만, 예수를 믿은 후에 우리는 성도,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므로 언약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표징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언약을 재확인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복음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은혜로 살아가게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요청하는 것은 믿음의 조상으로 살아야가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성은 부여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은혜로만 살아가지 못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분명한 증거를 주십니다.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날 것이고 말씀하여주십니다. 19장에 세 천사 중 한 분을 많은 신학자들은 성자 하나님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세 천사를 극진하게 대접합니다. 그리고 사라의 몸을 통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능이 끝났음을 말하며, 속으로 비웃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 ‘네가 하나님을 무시하느냐? 전능하신 하나님 못 할 일이 어디 있겠느냐?’ 라며 꾸짖으십니다. 우리가 사라의 상황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현실은 사라가 우리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하지만 사라는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사라와 같이 잊어버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사람의 현실을 움직이시는 하나님, 우리의 현실은 소망이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책망 받는 이유는 하나님을 잊어버림으로 책방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라의 모습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도 웃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으로 인해 멸망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소돔이 멸망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의인이 있는데 멸망하시겠습니까? 50인, 45인, 40인, 30인, 20인, 10인....’ 이에 하나님께서 ‘그러면 좋다. 소돔에 10명의 의인이 있다면 멸망하지 않겠다.’라고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소돔에는 의인이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아셨지만,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소돔의 타락이 나타납니다. 두 두 천사가 소돔에 갔을 때, 성적으로 타락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동성애를 지칭하는 ‘소도미’라는 말은 여기 소돔에서 발생하였습니다. 타락한 사회에서 나오는 것이 동성애 입니다. 소돔은 철저하게 타락하였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사위와 처를 보면 그 실상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롯의 사위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고 롯의 처는 말씀을 어김으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돔에서 나온 두 딸은 아버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서 모압과 벤암미를 낳았는데, 이들은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과 끊임없는 갈등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볼 수 있는데, 모압 여인 룻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우리가 17~19장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의 틀에서 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붙잡여 살명 반드시 이루어진다. 기록된 말씀 성경과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 때,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를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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