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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연구(15) - 창세기[12] 박석화 2009-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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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성경연구 - 20:1~22:23)

 

데라의 족보

 

 

  오늘 살펴볼 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19장에서 볼 수 있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기도의 사람 아브라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이 20장에서는 애굽에서 범했던 죄를 다시 범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 앞에서 애굽 왕 바로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의 누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18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라를 통해서 이삭이 낳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자신의 아내를 아비멜렉에게 보낸다는 것을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을 속인 아브라함,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통해 자손을 낳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꿈 가운데 나타나셔서 아비멜렉에게 범죄 하지 않게 하시며, 심판의 경고를 내립니다. 이에 아비멜렉은 하나님께 나는 아브라함이 누이라 그러했기에 취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하기를 선지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돌려보내면 아브라함이 너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선지자인 아브라함을 돌려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후에 사라의 태가 열리고 잉태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갑자기 20장에 이러한 아브라함의 실수를 기록해 놓았을까?

18장 아브라함은 아들을 천사, 19장 소돔의 심판, 20장 아브라함의 실수, 21장 약속의 자손인 이삭이 출생, 21장 7절에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아들을 낳았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 100세 아이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적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는 모습은 온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21장에 비로서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20장에 나타나는 아브라함의 실수를 하나님께서 덮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라를 잉태, 자손을 낳게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18장에서 보여 진 모습은 믿음이 충만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20장에서 본 아브라함의 모습은 18장의 아브라함의 모습과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영적인 침체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침체가 왔다는 것에 대해서 기다려주고 참아주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하는 데 자신의 의지와 방법으로 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영적인 침체가 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침체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어려운 삶이 찾아오고, 뜻하지 않은 일들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힘들고 지치고 할 때, 어느 순간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가운데 흐려질 때가 있습니다. 흐려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세속적 방법으로 살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방법이 쉽고 편한 방식으로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침체는 하나님께서 오시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구출해 내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침체가 올 때, 어느 날 회복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지체들의 교제 속에서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삭을 얻게 될 때, 이스마엘이라는 자손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4:29에는 이스마엘 육체 자손이고 이삭은 약속의 자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는 이삭이었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자란 이스마엘은 이삭을 희롱합니다. 이로 인해서 이스마엘을 광야로 쫓겨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에게 큰 나라를 약속하셨기 때문에 보호하시고 나라를 만들어 가십니다.

  갈라디아서를 보게 되면, 이스마엘을 육체를 따라 난자라 하였고, 이삭은 약속을 따라 난 자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서 육체에 따라 난 자를 육법에 속한 자, 약속을 따라 난 자는 믿음에 속한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는 유대주의자를 말하는 것이고, 믿음에 속한 자는 약속에 따라서 택함 받은 자입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였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이 택함 받은 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이전처럼 육신에 속한 자들을 성령에 속한 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이는 같이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하나님께 속한 자들의 관계를 말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구원받은 자들을 핍박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들이 핍박받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는 약속으로 택함 받은 자가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약속을 따라 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삭을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21장에 보게 되면, 100세에 얻은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바치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온전히 순종하여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불로 태워 바치라고 하였을 때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죽었던 태에서 생명을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아들을 주실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의롭다는 칭호를 부여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이 이삭이 번제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라고 할 때, 아브라함은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다 준비하여놓았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다시 살려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이삭을 생각하였을까? 하나님의 또 다른 섭리를 생각하였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통해서 약속을 이루어 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에,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릴 확신이 있었기에, 이 일 가운데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을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 할 때, 어린양을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이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어린 양를 통해서 이삭은 구원을 받습니다. 이삭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모든 믿음의 백성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은 인류를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이 모리아 산은 후에 예루살렘이 됩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택한 받은 하나님의 자손에게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섭리가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떠나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인식해야할 중요할 사실은, 우리에게 간섭하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여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확신하는 자에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약속의 자녀가 있는 교회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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