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연구(106) - 민수기[30] | 박석화 | 2011-06-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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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 연구 (민수기 27:1-23) 민수기 27장 26장까지의 말씀을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각 지파와 각 지파의 민족 수와 민족 수가 같을 때는 제비를 뽑아 땅의 기업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요셉의 가문 가운데 슬로브핫의 딸들이 있었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땅을 배분한 이후에 모세에게 나아와 탄원을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스려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에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민27:3-4) 슬로브핫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기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슬로브핫의 딸들은 기업이 없었고,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겠습니까라고 모세에게 탄원하였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아버지 슬로브핫이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기업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모세가 하나님께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땅을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공평(정의)하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1. 작은 자의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 슬로브핫의 딸들, 즉 여인들은 지켜줄 남자가 없었습니다. 지켜줄 남자가 없는 슬로브핫의 딸들은 작은 자입니다. 이 슬로브핫의 딸들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이 슬로브핫의 딸들의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작은 자의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면, 작은 자의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믿음이 큰 역사를 만듭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여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공평하시다면, 아들에게만 기업을 주시겠습니까? 여자없이 가정이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러므로 딸들에게도 기업을 주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라고 멸시하지 않으시고, 남자라고 딸들보다 높이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딸들을 통해서 교회 역사 가운데 교회를 세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전에는 아들 중심으로 땅을 나누어 주었던 모세에게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기업을 그 딸에게 돌릴 것이요(민27:8) 모든 딸들의 믿음이 이스라엘 전체의 법이 된 것입니다. 이 슬로브핫의 작은 믿음이 큰 역사를 일으키어, 이스라엘 전체의 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업이 공평하게 다 나누어질 수 있도록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 나누어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만한 믿음이 이 산을 옮겨 저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소리를 들으시고, 작음 믿음을 원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작은 믿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비록 슬로브핫의 딸은 작은 믿음이 있었지만, 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2. 외적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우리의 세상은 얼마나 외적인 조건에 흔들리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야기가 끝나자 모세를 부릅니다.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보여주시면서, 너는 아론의 길을 갈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의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민27:12-13)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보여주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땅을 보여준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땅을 보여주시고, 모세에게 아론의 길을 갈 것이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십니다.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민 27:14) 모세 같은 외적 조건으로 보면, 우리의 지도자인 모세가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적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징계(공의)를 나타내셨습니다. 모세는 구원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지만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앞으로 너희가 살아가야 할 것이 어떠한 모습인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섰을 때, 하나님 앞에선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지 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믿음은 계급, 직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은사가 다른 것입니다. 각자의 은사로 교회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우리의 외적 조건에 따라서 사랑과 징계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모세를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 모습을 살아갈 것을 고민하여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일관성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듣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나 제가 떠나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없으니 이스라엘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세워달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주저함 없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민 27:18) 이 장면을 보시면서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변합 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이스라엘을 보고 계셨고, 이스라엘의 다음을 이끌어 가실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는 우리 세대에 최선을 다하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준비하시는 보게 됩니. 하나님은 우리의 정확히 이끌어 가십니다. 철저하게 이끌어 가십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모세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1절을 보게 됩니다.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민 27:21) 모세는 모든 문제를 직접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하나님께 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직접 하나님께 묻지 않고 제사장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에게 반드시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서 그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와 여호수아의 차이입니다. 이후 다윗도 제사장의 판결을 받아야 했습니다. 모세 이후에 모두 제사장 앞에서 서야 했습니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이 후에 나타나지 않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세와 같이 제사장을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없다고, 우리가 작다고 하여도 하나님 앞에서 높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잘난 체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위축되는 것도 죄고, 스스로 자랑하고 잘난 체하는 것도 죄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의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믿음을 가지고 정직하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이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고, 공평하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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