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연구(119) - 신명기[5] | 박석화 | 2011-09-28 | |||
|
|||||
구속사적 성경 연구 (신명기 3:1-29) 신명기 3장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신명기 3장인데요. 신명기 3장의 전체 주제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만해도 족하다”입니다. 이 말은 듣는 사람마다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신명기 3장의 구조를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11절 : 바산 왕 옥의 정복 12-20 : 요단 동편을 배분 21-22 : 여호수아의 격려 23-29 : 모세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고대 근동에서 바산 왕 옥은, 당시에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왕은 가나안 땅에 가는 길에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신 3:11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왕 옥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 침상이라 지금 오히려 암몬 족속의 랍바에 있지 아니하냐 그것을 사람의 보통 규빗으로 재면 그 장이 아홉 규빗이요 광이 네 규빗이니라) 철 침상의 모습은 그들의 위치를 보여줍니다. 르바임 족속에 대해서 신명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 2:11 그들을 아낙 족속과 같이 르바임이라 칭하였으나 모압 사람은 그들을 에밈이라 칭하였으며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 바산 왕 옥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데 넘어야 반드시 넘어야 한 산입니다. 민수기에서 보았던 것이 생각날 것입니다. 르우벤과 갓 자손이 요단 동편의 땅을 달라고 합니다. 이러한 요구 가운데 실랑이가 일어나지만, 르우벤과 갓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우리가 앞장 서 싸우고, 그 후에 돌아오겠다고 합니다.이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요단 동편 땅에 대해 선봉이 되어 가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2-20절의 말씀입니다. 12-17절 : 요단 동편 배분 17-20 : 르우벤 갓 지파의 명령 요단 동편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에 요단 저편도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신 3:21-22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가 목도하였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갑니다. 이제 혼자가 되었다는 것은 부담감으로 돌아옵니다. 이 때, 하나님이 나타나서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싸워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23-29절을 보게 되면 늙은 노인 모세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할 수 도 있고 간청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가 보기에 가나안 땅을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못 들어가게 하십니다. 모세가 다시 간청합니다. 좋은 땅에 들어가면 안 될 까요? 눈앞에 가나안 땅에 왔는데, 하나님이 거절하십니다. 신 3:25-27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 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보라 네가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그만해도 족하니,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했을 때 어떠할까요? 모세는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변개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모세가 다시 찔러보는 것입니다. 이 모세의 기도는 간절함과 소망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여 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세 가지가 가운데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이 세 가지 내용(바산 왕 정복, 요단강 배분, 여호수아의 격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신 3:3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붙이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신 3:18 그 때에 내가 이 땅을 받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신 3:22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1.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있습니다. 전쟁은 단순히 치고 박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하나님이 바산 옥을 정복하였습니다. 요단 동편의 배분의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확신을 주신 것 입니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에서의 동일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신약의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신구약에 일어났던 하나님을 보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나아갈 세상 우리가 나아갈 내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갈 수 있는 것은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서 우리가 동일한 여건가운데 있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불안한 앞일 가운데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면, 전쟁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2.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요단 동편을 배분하신 하나님께서, 네 형제들에게도 동일한 안식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는 요단 동편과 요단 이편에 불평등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늘 동일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 3:26-29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 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보라 네가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하고 그를 담대케 하며 그를 강경케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로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때에 우리가 벨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하였었느니라 요단 동편과 요단 서편이 다르지 않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10지파 반과 2지파 반과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라는 것을 인식을 해야 합니다. 모세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은 공평하다고 한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불의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공평하신 분입니다. 좌우로 치우침이 없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정직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귀종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 미모를 보고 판단한다고 하면, 우리는 수억 실패할 것입니다. 우리의 외적인 조건을 보면 하나님 늘 상처 받을 것이고 시험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외적인 조건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보시는 분이십니다. 3. 자족하는 신앙을 있어야 합니다. 고후 12:8-9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너무 아파서 나를 낫게 하여달라고 하실 때, 하나님께서 네 은혜가 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이 병 고침을 받지 못하였는데, 약한 것이 은혜라고 합니다. 내가 약하기에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할 때 강함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약할 때, 그리스도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모든 것이 다 갖추어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모세에게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신 3: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 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보라 네가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이 행간에서 모세는 땅을 밟아보기라도 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유추하는 이유는 비스가 산에 가서 보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이에 하나님이 네 은혜가 족하다. 여기까지 네가 할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모습에서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밥을 적당히 먹으며 건강하지만, 과도하면 건강을 해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네 은혜가 족하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 이 대답은 사실 고린도후서 12-8-9절에서 바울의 고백을 알 수 있습니다. 고후 12:8-9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 능력이 넘쳐서, 나의 능력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말한 바는 내가 약한 데서 그리스도의 은혜가 드러났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족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좋아보이는 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은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자족하면,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과도한 욕심은 패망으로 이끕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만하라고 할 때, 아멘 해야 합니다. 언제 그만하는 것은 성령께서 각자에게 알려주십니다. 아멘 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을 것을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내가 원하는 대로 들려지지 않는다면, 네 은혜가 족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원하시는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이 고쳐주지 않아서 그 자리에 머물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은혜가 족하다. 그리고 그 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만해도 되었다고 할 때, 아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