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연구(150) - 신명기[36] | 박석화 | 2012-07-12 | |||
|
|||||
구속사적 성경 연구 (신명기 25:1-19) 신명기 25장 우리가 신명기 25장은 신명기 24장에서 연속되어지는 말씀입니다.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삶의 윤리를 말하여 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는 우리는 모두가 고백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입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실천합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희에게 한 것 같이 너희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원리/기준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 알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윤리에 대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신명기 25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배려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1. 공정한 재판 재판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독재 국가는 공정성이 없습니다. 재판의 공정성이 없는 국가는 대부분 독재 국가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국가는 재판의 공정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독재를 경험할 때 공정성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공정성이 사라지면 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공정성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요시 여기는 것은 공정성입니다. 재판을 공정케 함으로 누구라도 한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인혁당이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학생들을 간첩이라고 잡은 이후, 재판을 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그 다음날 간첩이라고 하여 사형으로 죽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인혁당 사건이 무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임을 당한 가족들은 그동안 간첩의 누명을 쓰고 살아간 한이 생겼습니다. 대부분 한이 생기면 떠나갑니다. 부부도 그렇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정성성은 다른 말로 하면 투명성입니다. 재정에 대해서 투명해야 하고, 직분을 세우는 투명해야 합니다. 사람의 부, 미, 목소리 등 조건으로 직분을 세워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요한 것이 공정, 즉 투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인은 벌을 주고 의인은 의인으로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만일 여기서 끝난다면 누구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은 다릅니다. 벌을 주되 40대 이상을 때리지 말라고 합니다. 비교하여 보면, 함무라비 법전으로 보면 태형은 20-60대를 때립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40대만 때리라고 합니다. 40대라는 것은 인권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신 25: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과다히 때리면 네가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 태형을 주려면 과다히 때려서 그에게 한을 가지지 말라고 합니다. 권징을 시행하여도 권징이 벌을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권징을 행해야 합니다.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함께 하지 못한 것과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회개를 하고, 내가 잘 하지 못해서 나의 사랑하는 지체가 죄를 지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그 사람이 돌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당사자들도 회개해야 하지만 더불어 지체가 잘못된 길에 가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함께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만약에 과다한 벌로 한을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공동체를 떠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2.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신 25:4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곡식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소를 끌고 밭을 갈아본 적이 있습니까? 왜 멍에도 달고 망을 달까요? 멍에는 밭가는 주인의 마음대로 가게 위한 것이고, 망을 씌우는 것은 곡식을 뜯어 먹지 말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은 배려입니다. 학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도와주는 소를 학대하지 말고 배려하라는 것입니다. 입에 망을 씌우는 것은 학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대하지 말고 배려하라는 것입니다. 3. 형사 취수법 (=계대법) 룻기를 보면 남편이 다 죽고, 혼자 이스라엘 땅에 온 룻은 결혼을 하고 싶어도 결혼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법에 의하면 기업 무를 자가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형제들 중에 한 명이 책임져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형제 중에 책임지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결혼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게 되면, 형제들 가운데 남편이 죽게 되어 제수씨가 과부가 되면, 경제적 이유 때문에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받지 않기 위해 결혼을 거부하면, 여자는 있어야 할 곳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는 원하는 곳으로 시집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말하기를 싫어한다면 신발을 벗어서 때리라는 것입니다. 부끄럽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이 우리에게 통용되지 않지만, 이것이 바로 배려입니다. 공동체에 대하여 이러한 배려야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싸움 신 25:11-12 두 사람이 서로 싸울 때에 한 사람의 아내가 그 남편을 그 치는 자의 손에서 구하려 하여 가까이 가서 손을 벌려 그 사람의 음낭을 잡거든 너는 그 여인의 손을 찍어 버릴 것이고 네 눈이 그를 불쌍히 보지 말지니라 두 부부가 싸웠습니다. 한 부부의 아내가 다른 부부의 남편의 음낭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너는 그 여인의 손을 찍어 버리라고 합니다. 남편을 도와주었는데, 그 여인의 손을 찍어버리라고 합니다. 남자의 음낭은 생명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의 음낭을 잡았다는 것은 생명을 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음낭이 잡히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싸우는 데, 뺨을 때렸다고 생각하여 보십시오. 자존심을 상하는 일입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동체 안에서 배려에 대한 말씀입니다. 5. 공정한 저울 추 신 25:13-16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리라 무릇 이같이 하는 자, 무릇 부정당히 행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 공정한 저울추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두 개의 저울추가 있어서 들어갈 때 저울추와 나갈 때 저울추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울추를 두 개를 가지고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비싸게 사가고 다른 사람은 싸게 사게 됩니다. 공정하지 못하여 한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을 샀는데, 천원주고 사서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1200원 주고 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은 같은 물건을 700원 주고 산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천원주고 산 사람은 속상해 합니다. 배려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정하라고 말씀합니다. 6. 아멜렉에 관한 것 신 25:17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아말렉에 관한 것은 출애굽기 17장 8-16절에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말렉은 다 민족 족속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도 아말렉 족속에 대한 고고학적인 발견들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다만 그들이 다 민족이었다는 것만 남았다고 합니다. 아말렉 족속이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그들에 대한 것은 다민족으로 구성되었다는 것만 남아있습니다. 아말렉 족속이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아말렉 족속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 25: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실제로 아말렉을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입니다. 고고학적으로도 아말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져야할 자세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배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배려하는 자가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배려하라는 것입니다. 한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와 성도, 그리고 성도들 사이, 부부 사이에 한이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배려하고 늘 공정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가 힘들기 때문에서 배려하게 되면 조금 나아지는 것입니다. 혼자가면 지치고 넘어집니다. 어떠한 일도 그렇습니다. 청소하는 일, 식사 준비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가족 가운데 어려운 일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 신경 써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서로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배려의 정신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데 중요한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먼저 배려할 때 하나님 나라는 우리를 통해 확장될 것입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