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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연구(154) - 신명기[40] 박석화 201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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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 연구 (신명기 28:15-47)

 

 

신명기 28장(2)

 

제가 이번 주에 개혁과 부흥 컨퍼런스를 하였습니다. 개혁과 부흥 컨퍼런스의 주제는 경제 민주화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계속해서 신문과 매스컴을 통해서 묻지 살인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몇몇 사람이 사회에 불만을 품은 일인가?

여의도에서 일어난 사건은 2년 전에 회사에서 해고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30대 초반인 이 사람의 주머니에 200원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어디에 있으며 엄청난 위기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오늘 기사를 보니 전월세비가 30%가 올랐다고 합니다. 전월세 값이 올라갔다는 것은 서울에 있는 사람이 경기도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기도에 있는 사람은 더 지방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돈 없는 사람은 점점 갈대가 없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박탈감을 느끼게 되고 자존심이 무너지게 됩니다. 사람이 살면서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지면 자살에 이르게 됩니다. 자존감이 공동체적으로 무너진다고 한다면, 자살이 아니라 폭동이 일어납니다.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강의를 들으면서 대표적인 경제학자가 이야기하기를 뒷말을 흐리면서 내년에는 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울 정도로 경제가 바닥이라고 합니다. 올해 우리나라가 경제 수지가 거의 제로이고, 경제 성장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젊은 사람들에게 집을 사라고 대출을 하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젊은 나이에 갈 곳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이 있으면 한강으로 가지만, 정신이 없는 사람은 억울한 마음에 살인을 하게 됩니다. 방어기재가 완전히 박탈되어서 정신적 질환으로 오면 자살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정신적 질환으로 오지 않고 자신에게 울화통이 생기면 억울한 나머지 해코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사회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니 스웨덴은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정치권 이 놈들, 그리고 엄청난 부를 가지고 호의호식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됩니다. 이럴 때 개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묻지마 살인이고,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폭동입니다. 저는 두려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한국에서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은 엄청난 복음의 은혜를 누리는 나라였습니다. 70-80년대는 교회가 세워지기만 하면 다 채워졌습니다. 그런대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정말로 그 때 당시는 교회 간판만 세우면 교회 성도가 채워졌고, 전도만 해도 교회에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은 전도가 잘 안됩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무너지는 것인 덕양구 지역만 해도 작년 재작년에 50개가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10만 명 정도의 목사님이 택시 운전하고 있습니다. 목회를 그만두는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왜 이렇게 되었는가? 교회가 듣지 말아야 할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보증수표가 아니라 부도수표가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는 성도가 가져야 할 본질적인 자세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장은 축복과 저주의 말씀입니다. 1-14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으면 너희에게 축복이 있겠다는 말씀이고, 15-68절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저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5-68절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5-19절, 20-46절, 27-68절, 세 부분으로 나누어질 때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질 때마다 모세는 왜 저주를 받아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 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15절 말씀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주를 선언 받을 때, 저주의 첫 번째 선언 이유는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신 28: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학생들에게 집에 와서 부모님에게 깨지고, 학교 가서 깨지만 가기 싫을 것입니다. 직장가서도 들고 집에 와서도 힘들면 어디가고 싶을까요? 한강에 가고 싶을 것입니다. 너무 무서운 표현입니다. 이는 무엇에 대한 반대 표현이지요? 이는 축복의 반대 표현입니다. 이는 축복에 대해서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는 다는 말입니다. 우리 말처럼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말이 있습니다. 집에서 복을 받고 밖에서도 복을 받는 사람이 진짜 복 있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의 특징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안으로도 피폐해져 있고, 밖으로도 피폐해져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정말 신뢰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마지막의 신뢰는 주머니 신뢰입니다. 한 교회에서 부부가 살다가 망했습니다. 한 교회의 성도로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잘 망했다고 하시겠습니까?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나누어 주는 것은 쉽게 되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저희 교회가 지하에서 탈출하여 교회를 얻었다고 하면 자유함이 있을까요? 불편함이 있을까요? 우리의 마음속에 자유함을 갖지 아니하면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이 자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입니다. 이를 위해 무지하게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적게 가지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 교회가 여기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난한자와 고아와 과부가 지천에 있는데 한국 교회가 이 일에 열심히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구조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외면한다는 것은 그들이 교회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교회에 올 수 있는 기회가 박탈당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가난한 사람과 객과 고아들을 위해서 낮은 자리에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불편하다고 해서 우리는 미워하거나 저주하면 안 됩니다. 한국 교회가 미워하거나 저주하였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나가도 저주 받고 들어와도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주 받는 자리에서 축복으로 자리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잊은 것입니다.

 

신 28:20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공구와 견책을 내리사 망하여 속히 파멸케 하실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잊게 되는 것은 보이는 세상이 좋을 때입니다. 교회가 세속화되면 하나님을 잊게 됩니다. 교회가 성장을 추구하고 영광을 추구하고 돈을 추구하면 하나님을 잊게 됩니다. 하나님을 잊게 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저주입니다. 하나님의 잊으면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잊으면 자신이 보는 대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잊게 되는 것은 세상이 좋아지면 하나님이 잊어집니다. 우리가 세속화 되어야지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더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잊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무단히 싸우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자족함이 없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탐욕입니다.

 

신 28:47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탐욕은 영적인 거머리입니다. 풍족함이 주어졌음에도 풍족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풍족함으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집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전세 값을 동결해야 합니다. 독일은 주인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입자들이 연합한 세입자 연합회에서 집세 값을 정합니다.

우리 안에 자족함이 없을 때, 탐욕으로 가득할 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아굴의 잠언처럼 필요한 양식으로 감사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늘 검소하고 절제하고 절약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이들이 위하여 준비를 하십시오. 그리고 때가 주어질 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자족함이 없으면 절대 남을 도와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삶에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자만하지 않습니다. 감사함과 기쁨으로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피하는 길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탐욕은 거머리와 같습니다. 거머리의 특징은 저절로 안 떨어집니다. 남이 떨어뜨려야 합니다. 피를 다 빨아먹고 쳐야 떨어집니다. 자기만을 위한 다는 것은 거머리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족하며 나누어주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가 그러해야 합니다.

 

교회는 폭동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되어야 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교회가 보호소가 되어야 합니다. 산성이요 방패라는 것이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있는 자리에서 이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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