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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연구(173) - 여호수아[9] 정대원 201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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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연구 (여호수아 6:15-27)
                                               
                                                                   여호수아 6장

여호수아
6장을 살펴보는데요. 오늘은 거룩한 구별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여리고 함락사건은 하나님의 주도로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능력, 전략. 지혜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리고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명령, 실행이 여리고 사건의 전부입니다. 다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은 그 일에 시중 든 것이었습니다. 가나안에서의 장벽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군사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임을 볼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사건을 보여줍니다. 일곱 번째 날에 제사장이 나팔을 붑니다.

여호와께서 이 성을 주셨느니라고 말하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리고 성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을 때에는 저항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영적인 삶에 있어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항거할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 장애물 앞에 서면 도망가고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봅니다.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이었습니다.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였고, 인간의 해결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신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며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오늘은 여리고 성 사건 가운데 특별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난 뒤에 여리고 성을 통하여 주신 명령이 있는데. 18절 말씀인데요. 19절인데요.

21절입니다.

 

이 장면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난 뒤에 요구하신 것은 그 곳에 있는 살아있는 생물들을 다 진멸하라는 것입니다. 이거 생각하면 되게 무섭죠. 다 진멸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은금과 동철 기구들만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은금과 동철 기구는 생명이 없죠. 이것은 문화적 산물을 보여주는 거죠. 이러한 것들은 구별된 거고,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라는 것이죠. 다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쓰이는 도구들이 되거든요.

생물들은 전부다 멸하고 하나도 남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 여호와의 것이지 너희들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도 손대서는 안 된다. 여리고 성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줍니다. 여리고 성 사건은 너희가 한 게 아니고 내가 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아간은 하나님의 것을 취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하게 기억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은 것들은 다 죽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의 사용되어졌던 모든 것들이죠. 거룩함이 훼손되고, 훼손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악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온전히 가나안 땅에 내어 쫓지 않음으로 여호수아 죽고 난 뒤에 다른 세대가 그 남은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시가 되어서 죄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거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거룩함이 훼손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함락시킨 이후에 흥분할 게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 기생 라합의 일인데요.

17절인데요. 여리고 성에 정탐꾼이 갔을 때 기생 라합이 살리지 않았습니까? 여호수아는 이 사건을 기억하고 여리고 성이 무너졌을 때, 기생 라합을 구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23절 보세요.

이스라엘 진 밖에 두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다 불사르고 난 뒤에 은금과 동철 기구만 집어넣습니다. 진 밖에 두었는데요. 왜 그랬을까요?

진 밖에 둔 것은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성결 의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라합과 모든 친족들이 진 밖에 두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결 의식을 취하고 다시 와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이스라엘의 일원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생물들도 마찬가지고, 살아있는 사람은 기생 라합과 그의 친족들과 가족들, 이들을 거룩하게 구별합니다. 여리고 성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구별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장면을 통해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여리고가 얼마나 추악하고 우상의 도시였고, 철저하게 어둠의 도시였던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뼛속 깊이 철저히 우상의 성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여리고 성은 다 죽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이들은 거룩하게 구별하지 않고서는 진 안에 들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배타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거룩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죠. 이 사건을 보여주는 거죠.

오늘날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지만 아무나 들어가지 않죠. 구별된 자만이 들어갑니다. 신학적 표현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로 보내신 자. 이 자만이 하나님 백성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될 때,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차별도 없습니다. 아무런 하나님 앞에서의 차별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음에 있어서 제약이 사라지는 것이죠. 기생 라합이 예수님의 족보에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마태복음 15

보아스와 이방여인 룻과 결혼하게 되는 것이죠. 거룩한 구별 이후에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떠한 제약도 없는 것이죠. 우리도 생각해보면, 이방인은 별 볼일 없는 것이죠. 우리는 이런 생각을 종종 하죠. 대한민국에 보게 되면, 어떠한 줄이 있어야 하는가. 그 줄에 서야만 삶의 지위에 있어서 올라가는 거잖아요. 교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관점을 보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는 줄이 없어요. 모두가 동일한 자격과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죠. 기생이었습니다. 이방인이었고,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저주하셨던 곳에서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일원이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여리고 성 사건을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룩한 구별된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은 모든 것이 열려져있다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 있고 감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게 되면, 우리는 변방이잖아요. 우리는 철저하게 우상을 섬기는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율법의 잣대로 보면 아무런 소망이 없는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함으로 거룩한 백성을 삼아주신 것입니다. 혈통적 유대인과 아무런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나, 거룩하게 구별된 우리나 동등된 존재인 것이죠. 이것이 바로 여리고 성 사건이 보여줍니다.

거룩한 구별.

여리고성 자체를 짓지 못하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어마어마한 사건이죠. 여리고 성에 기초자체도 파괴해버리는 겁니다. 왜일까요?

우상의 도시이고 어둠의 도시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곳입니다. 기초가 남아있다면, 그 기초는 하나님 나라를 파괴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깨끗하게 없애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정복에는 여리고 사건에 보여주는 이 일을 실행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망하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여리고 사건에 주신 철저하게 지키지 아니함으로 이스라엘 전체가 망하게 되는 것을 제공합니다.

열왕기상 1634

아합의 모습이거든요. 아합은 가장 하나님의 노를 격발한 왕이었습니다. 우상숭배의 극치를 달렸던 왕시대에 여리고성이 세워집니다. 이 구절을 보면, 여리고성이 가지고 있던 모습은 우상숭배요. 어둠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가 어두워지고 흔들리는 거죠. 이 의미는 하나님의 영광이 도전받고 연약한 우리의 육신의 유혹이 올 것이고, 그 유혹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섬기는 일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리고 성의 문제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 성에 모든 거 싹 죽여라.

우리는 라합을 살려야한다. 약속하신대로 .

그러나 그도 철저하게 구별되어 이스라엘 백성으로 받으라는 거죠.

하나님은 새로운 땅 가나안에 들어갈 때, 이 죄악 덩어리와 싸우는 겁니다. 철저하게 구별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놀라운 은혜로 살아가면서 죄의 잔재를 없애는 일입니다. 죄가 우리를 반드시 점령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구별이 필요합니다. 몸부림치며 싸우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죽이는 일이죠. 그러므로 십자가 사건에 보아야할 것이 있다면, 죄죽임 사건입니다. 죄를 죽인 사건입니다. 죄를 죽여야 우리의 백성이 되는 겁니다. 죄를 죽여야 합니다. 여리고성 사건에서 오늘 우리에게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돌아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7장에서 보게 되면, 이 사실 잘 알고 있는데, 철저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죠. 우리가 가야할 길, 죄와 싸우는 일, 우선순위가 사회변혁이 아니에요. 가장 우선순위는 가난한 자를 돕는 게 아니라고요.

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회변혁과 구제는 오래 못가요. 가다가 지치고 맙니다. 이 사회변혁과 구제는 나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아니라 나중에 나를 발목 잡는 거죠. 중요한 건 뭐냐면, 첫 번째는 너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겁니다. 죄가 해결되어질 때, 거룩한 나라가 보이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죄가 있는 한 사회변혁자, 구제를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죄가 우리로 하여금 교만의 자리에 서게 합니다. 철저하게 죽일 때, 비로소 그 소명을 삶의 현장에서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의 문제, 이 죄의 문제를 철저하게 죽이는 일이 필요합니다. 죄를 죽이면, 비로소 나로 하여금 이 땅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보게 되는데,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이 사실을 잘 기록한 책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책의 시작은 죄의 문제를 지적하고 십자가가 주는 죄의 싸움을 이야기하고, 그 책의 마지막에는 십자가가 세상을 어떻게 밝히는지 등대와 같이 비춰주는 걸 보게 됩니다.

아주 멋진 책이었고, 성경의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낸 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구별이 필요하고, 죄죽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은 일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죄의 찌꺼기를 없애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시작이요 과정이요 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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