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연구(184) - 여호수아[20] | 박석화 | 2013-05-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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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 연구 (여호수아23:1-16) 여호수아 23장 여호수아 23-24장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이 마지막 설교 중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여호수아 23장의 말씀입니다. 수 23: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가나안 땅 전체를 다 배분하고 난 뒤에 각 지파별로 자기 땅을 가지게 되었고, 여호수아가 늙어서 죽었습니다. 23장에서는 여호수아가 장로들, 두령들,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모읍니다. 그리고 24장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이 모읍니다. 그래서 두 번의 설교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번의 설교 내용은 분명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고자 하는 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소명이 끝날 때가 이른다. 우리의 소명이 언제까지 지속할 것 같지만, 마감할 때가옵니다. 2절에 보면 나는 나이 많아 늙었다고 하며 14절을 보면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간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우리는 나이가 많아 늙어지게 되고, 모든 사람이 가야할 길로 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고 가야할 시간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소명이 끝날 때가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는 이유는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사람은 구질구질하게 지내게 됩니다. 우리는 늙게 되어 있습니다. 늙으면서 몸의 변화를 가지게 되고, 눈이 흐려지고,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들이 서럽습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이러면 가지고 있던 많은 지식과 생각들을 논리 있게 전하지 못하고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 옵니다. 흐릿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느끼는 것은 운동할 때 느끼는 것인데, 20-30대를 쫓아가지 못합니다. 여호수아가 늙었다는 것은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늙었다는 것은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소명이 끝날 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주영 목사님이라는 분이 개척한다고 할 때 세 가지 중요한 말씀을 주신 분입니다. 참 설교를 잘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분이 나이 80이 되어서 강단에 쓰셨는데, 한 설교를 같은 말을 오분에 한 번씩 반복하시는 것입니다. 청중의 반응이 잼있습니다. 처음에는 성도들이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한 번 듣고 두 번 듣자 ‘이제 그만 오시면 안 되나’ 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 때쯤 되면 깨끗이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늙어서 설교를 한다면, 원고를 쓰고 원고 그대로 읽고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늙음이라는 우리에게 가져오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손봉호 장로님은 강의할 때 머리로 하지 않고 정확히 써가지고 와서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늙으면 저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늙었다는 것은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날이 옵니다. 때가 되면 그만 둘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가 오기 전까지 하나님이 주신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사람이 가는 곳에 간다. 모든 사람이 끝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입니다. 우리는 한 생애를 마치면서 이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2. 떠날 때는 아는 자가 떠날 때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떠날 때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떠날 때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마지막에 아름답게 퇴장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떠날 때가 아름다운 신앙은 어느 때입니까? 한국 교회의 현제 기독교의 앞 선 리더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점은 떠날 때가 아름답지 않는 것을 봅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에 진흙탕이 되어서 마지막을 부끄럽게 끝나는 사람을 봅니다. 그것을 볼 때, 후배 목사로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돈과 연관되어서 슬픔 결과를 내는 것을 봅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습니까? 떠날 때가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떠날 때가 아름답지 않으면 수치스러운 상황이 오게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여호수아는 떠날 때가 아름다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가 왜 아름다웠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는 그가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변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예 권력, 물질에 있어서 처음과 변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변한다면 마지막이 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이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많은 두령들 앞에서 마지막까지 그가 가졌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봅니다. 수 2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이 사실을 마지막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신 자라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싸우는 일에 수종만 들면 됩니다. 우리의 지략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고, 능력도 아니고 하나님이 싸우셨다. 마지막 삶에서 퇴장하면 여호수아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 23: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수 23:7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나라들 중에 가지 말라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에게 절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싸우신 분이라고 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율법 책을 지켜 행하라. 신앙의 기준은 말씀에 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말씀을 따라라. 그것이 너희들이 살 길이고, 하나님을 향한 바른 고백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신을 섬길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이기게 하는 것은 하나님인데, 다른 신을 섬기는 자에게 열매가 있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 23: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아름다운 모습은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여호와의 말씀이 우리의 삶의 시작이요 끝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상을 섬기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 끝까지 담대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서 싸우신 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기준이라고 말합니다. 우상 숭배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끝까지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에 남겨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떠한 말을 남기겠습니까? 마지막 말하고자 하는 말은 하고자 말의 핵심은 전체 인생을 다 대변하는 것입니다. 떠날 때가 아름다웠던 여호수아는 이 네 가지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말씀하는 것입니다. 자신 생각과 의지와 지략으로 살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자신의 삶의 모든 기준은 말씀이었음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결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상을 섬기는 자리에는 가운데 가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온 생애는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인생 전체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이는 여호수아의 삶의 전체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인가를 비추어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줍니다. 떠날 때가 아름다운 것은 내가 사는 삶의 알맹이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을 통하여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3. 영적인 성장을 멈추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늘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수 23:8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하나님께 친근히 하라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으라는 것이고 대면하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은 하나님과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것은 하나님과 대화하라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 아뢰는 관계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말씀과 기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멈추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기도는 어느 정도 했으니, 어제 했다고 오늘 쉬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고, 기도하는 것을 쉬는 죄를 범치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기도를 많이 했으니, 이제 쉬어야지 해서는 안 됩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라고 합니다. 오늘 성경 10장 읽었으니, 10일 동안 읽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끊어지는 하나님과 친근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결코 영적 성숙에 이르지 못합니다.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매일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라지 않고 머무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수 23:12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빠져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수 23:13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 너희가 만일 퇴보하면, 그리고 친근히라는 말을 같은 절에 두고 있습니다. 친근의 반대가 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근하지 않으면 퇴보하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날마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적인 공허함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날 인도하여 주지 않으면, 세상의 소리가 날 인도하여 가는 것입니다. 퇴보하면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 놀랍게도 퇴보한 자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는 자입니다. 가나안 족속을 내좇고 그들과 결코 혼인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함께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을 좇아내지 못하면 너희가 올무가 돼서 너희가 멸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퇴보하면 반드시 슬피 우는 현실에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친근하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마지막으로 주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묵상하고, 성경 읽고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먹으면 기억력이 사라집니다. 기억력이 사라지면 반복해서 공부하고 다시 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것은 한 번 배웠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퇴보하면 우리는 영적인 슬픔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씀에서 분명히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성장은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말씀인 동시에 우리에게 주는 말씀이라고 생각입니다. 14-16절까지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것을 주시지만, 심판도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정신 차려서 분명하게 서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이 이야기를 분명하게 하면서, 하나님은 선하시기 선한 열매를 주시지만, 이 자리에서 떨어지게 되면 반드시 너희에게 징계를 내리실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이 땅에서 멸절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감당해야 할 일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분투하고 싸워할 것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혼내주고 그 지도자가 사라질 것입니다.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서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준 것처럼 하나님을 끝까지 기억하고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저의 사역의 마지막에 어떠한 말을 할이지 모르지만, 여호수아를 보면서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잘 사아야 겠다. 힘들지만, 바른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온 생명을 바쳐야겠다. 우리가 모두가 마지막의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설 때, 우리 모두 멋진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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