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식 목사의 구속사적 성경연구(221) - 룻기[5] | 박석화 | 2014-08-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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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 연구 (룻기2:1-7)
룻기 2장
이제 룻기 2장에 들어오게 되면, 2장 부터눈 모압 여인 룻의 이스라엘 생활이 시작됩니다. 마치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새로운 삶이 이방 여인 룻에게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빈손으로 왔던 나오미와 룻의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장입니다. 2장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사람을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 지를 보게 됩니다. 오늘 읽은 내용들은 나오미와 룻이 이스라엘에 들어와서 정착합니다. 들어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얼마나 힘든 삶이 진행되겠습니까?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요청을 합니다. 이렇게 살 수 없고 내가 가서 일을 하겠습니다. 나오미는 이렇게 요청하는 룻에게 갈 것을 허락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은혜를 베풀면 그를 따라가서 열심히 일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룻이 나가서 일하러 간 밭이 마침 보아스라고 하는 사람의 밭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농경사회에 였기 때문에 밭으로 일을 하러 갔겠지요. 오늘 성경을 보면 우연히라는 표현이 있지만, 보아스 소유의 밭에서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본문을 보게 되면, 7절부터 보면 아침부터 와서 지금까지 계속 일하는 것을 볼 때, 열심히 일하였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였던 끝내 룻은 보아스 눈에 띄게 되고, 보아스는 그 여인이 누구인지를 묻게 됩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룻을 보살펴주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이때부터 룻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룻은 자신의 열심히 여기까지 온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룻을 향한 특별한 계획하심을 이루어감을 보게 됩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이 상황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열중할 것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로 말미암아 룻은 이방 여인 룻이 아니라 보아스의 아내가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스라엘 정착 내용이 1-7절의 말씀입니다. 1-7절까지의 이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짧은 내용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의 모습이 어떤지를 보겠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지 말씀하여 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본문을 통하여 다섯 가지를 정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자가 누리는 은혜입니다. 성경에서 은혜는 아무 조건 없이 베풀어주는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오미와 룻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 특별히 룻의 모습에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는 것은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 거꾸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잘 볼 수 있습니다. 나오미와 룻에 가정에 일어나는 은혜의 가정에서 이런 놀라운 일을 보게 됩니다. 1절을 보면,
(룻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삼상 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막 1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막 10: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니까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버리는 자에게 주신 약속은 금세에 있어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고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룻의 모습이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은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물론 시집 왔으니 다르지만, 자신의 형제들을 다 포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룻을 기억하시고 유력한 자 보아스를 예비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에게는 우연한 삶이라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나오미와 룻의 생활은 풍성하지 못하였습니다. 끼니를 걱정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룻은 이삭 주우는 것을 결정합니다. 이삭 줍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룻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룻은 이방여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룻은 과부였습니다.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많은 남자가 일하고 있는 곳에 같이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면식이 하나도 없습니다. 룻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디 가서 하겠습니까? 용기를 냅니다. 가겠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이 2절에 나타납니다.
(룻 2: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아무것도 앞이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굶어 죽을 지경이니 안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나간다고 해서 무엇이 있는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누가 은혜를 베풀면 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허락합니다. 허락하는 나오미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내키지 않겠죠. 나오미는 늙어서 일을 할 수는 없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먹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주어졌고, 모든 상황이 사면초가와 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니 룻이 가겠다고 했을 때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룻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셨습니다. 룻이 받은 은혜를 은혜의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이삭을 줍는 밭이 나타났습니다. 놀랍게도 그 밭은 유력자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룻 2: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갔는데, 하필 그 밭이 유력자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우연히. 룻이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룻은 누구 땅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간 곳이 엘리멜렉의 친족인 유력자 보아스의 밭이라고 하였습니다. 우연히 간 것입니다. 룻의 입장에서는 우연한 일입니다. 보아스의 밭인지 알고 간 것이 아니고 어떻게 가다보니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우연히 일어난 것을 보여 지지만,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스프롤 목사님이 섭리를 정의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앞을 살펴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룻의 상황을 미리 내다본 것입니다. 사람들은 미리 내다볼 수 없기에 우연히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연히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 때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미리 살펴보심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혹 내가 실 수 있습니다. 잘못 간 나를 합력하여 나를 선을 이루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일이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연히 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삶을 미리 살펴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향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전에 이러한 계획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적절한 때에 이루어갑니다. 우리에게는 우연히 일어나는 듯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선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진 죄를 죄라고 합니다. 죄는 죄입니다. 죄를 진 우리를 징계하시고 책망하시므로 하나님은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사람 막대기과 인생 채찍을 통하여 하나님은 선을 이뤄 가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단 하나도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룻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삶에서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우리의 삶에도 단 하나의 예외 없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룻을 통하여 이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작은 삶 하나하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부름받은 나의 삶은 작은 것 하나도 헛 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작은 삶이라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마침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완성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것입니다. 나에게 이루어진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섭리하신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영적 공동체는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맛보는 통로라는 것입니다. 가족을 떠난 하나님 품에 안긴 룻에게 주어진 현실은 고난이었습니다. 바르게 신앙 생활하려고 하는 데 고난이 앞에 기다립니다. 그러면 참 난감하지요. 이제 제대로 신앙생활 해야겠다고 했는데,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오면 10의 9는 쓰러집니다. 원망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이야기 하고, 세속적 방법 생각하고, 온갖 죄악에 빠져 들어갑니다. 일용한 양식 먹는 것에 감사한 것입니다. 죄를 덜 짓기 때문입니다. 일용한 양식을 먹고 있으면 죄를 덜 짓습니다. 부할 때 짓는 죄와 가난할 때 짓는 죄는 같습니다. 모습만 다릅니다. 그래서 아굴의 기도로 뼈 속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어찌 되었든, 새로운 신앙, 새로운 삶, 새로운 믿음의 길을 가려고하는 것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러운 것을 맞이하게 합니다. 그런 것을 경험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고난은 잠깐입니다. 10명중에 1명은 그 고난을 이기는데, 우리가 그 한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룻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은 우리를 절망시키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룻을 위하여 유역한자 보아스를 예비하여 주셨습니다. 보아스는 공동체 안에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자였지만, 교만하거나 욕심에 가득 차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는 자였습니다. 이방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사람들, 여자라고 함부러 여겨서는 안 됩니다. 보아스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룻을 위해 이러한 사람을 예비한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체 속에 룻을 보낸 것입니다. 4절 보겠습니다.
(룻 2: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네 번째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나태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룻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시어머니를 모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갔습니다. 사람들이 룻의 열심을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룻의 효심뿐아니라 부지런함과 정직함을 알았습니다. 그는 나태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보아스 눈에 이런 이방 여인 룻이 들어온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보아스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질문하자 놀라운 답을 얻게 됩니다.
(룻 2: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뉘 소녀냐 (룻 2: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룻 2: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는 삶의 위로로 나타납니다. 정직하며 최선을 다했던 룻에게 하나님은 위로해 주셨습니다.
(룻 2: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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