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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식 목사의 구속사적 성경연구(223) - 룻기[7] 박석화 201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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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 연구 (룻기2:14-23)

룻기 2장(3)

룻기 2장의 마지막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룻기를 보고 있는데, 룻기 2:8-14절까지 보면 보아스가 룻에게 다른 밭으로 가서 보리를 줍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목이 마르거든 소년들이 길러온 것을 먹으라고 이야기 합니다. 룻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는 보아스에게 나는 이방여인인데 어찌하여 나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줍니까? 라고 하자, 보아스가 룻에게 말하기를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이야기 합니다. 보아스가 룻의 행위를 들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것이지요. 보아스가 이야기 합니다. 보아스가 힘 있는 사람, 유력한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힘 있는 자 보아스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가 너에게 임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룻이 행한 일은 시모와 함께 하나님을 믿는 결단으로 이방 땅으로 온 것입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시모에게 왔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보아스가 한 이야기는 룻이 결단한 내면 다시 말하면 믿음의 결단을 보아스가 안 것입니다. 그러기에 룻에게 믿음으로 한 행동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아스가 한 말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의 상급을 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상이 없으면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고, 상의 종류에 따라 계급을 따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은 있습니다. 약속된 것입니다. 상급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상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도 나를 따르는 자에게 고난이 있지만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상은 믿음으로 행한 자에게 주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행한 자는 상이 없다고 할지라도 결코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은 반드시 약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보아스가 룻에게 행한 일을 하나님께서 보응하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종종 우리는 이런 말합니다. ‘집사님에게 하나님께서 상과 은혜를 주시기 원해요.’ 여기에는 어떤 함정이 있습니다. 여기에 함정은 ‘나는 집사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 거예요. 다 하나님께 하실거예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행동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보아스가 하나님께서 너에게 행한 일을 보응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보아스가 한 일은 룻이 필요한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룻은 보아스로부터 많은 보응을 받았습니다. 보아스는 너에게 하나님께서 보응해 주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룻은 상을 받았습니다. 누구에게 받았지요? 예수님의 말씀처럼 나를 따르면 이 땅에서 상급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자에게 의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도 상급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누구에게 상을 받았습니까? 룻은 누구에게 상을 받았습니까? 보아스에게 받았습니까? 하나님께 받았습니까? 룻은 하나님께서 받았습니다. 보아스를 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통하여 주셨습니다. 보아스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아스의 마음에 흘러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보아스가 입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너가 행한 일을 하나님께서 보응하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입으로 고백하는 열매가 있습니다. 하나님 집사님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에 대해 고백에 나도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보아스의 모습이 이런 것입니다. 결국 룻은 하나님께로부터 보아스를 통하여 상급을 받습니다.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노라 하면서 13절에서 보듯이 나는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룻이 한 고백이 당신께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보아스가 이야기하기를 네가 한 일에 하나님께서 보응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룻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우리 같으면 ‘하나님께 집사님께 행한 일에 상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에 ‘아멘’하겠지요. 그런데 룻은 목사님께 은혜 받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하지 않아요? 우리 이야기라고 생각하여 보십시오. ‘집사님 앞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목사님께서 은혜를 베풀주세요’라는 것입니다. 룻은 당돌하게 은혜달라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룻은 보아스가 어떠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보아스의 이전 행동을 아는 룻이 하는 말은 지금까지 은혜 베풀어 주신 것에 감사하는 것이고 그 은혜가 지속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룻이 지금까지의 은혜에 대해 고백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급을 감당할 그런 믿음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겠고, 보아스가 지금까지 해주신 대로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아멘’이라고 하는 것은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지도 못하며 받기를 원하는 뻔뻔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멋있는 고백입니다. ‘보아스에게 은혜 입히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의 선물을 그대로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룻은 한 에바를 얻습니다. 보아스가 룻의 고백을 듣고 다른 여인에게 주지 않은 큰 양인 한 에바를 룻은 얻게 것입니다. 먹고도 남는 양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룻이 말하기를 보아스에게 큰 은혜를 받기 원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책임져 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룻이 말하기를 은혜 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보아스가 안 것입니다. 원래 있던 것에서 조금 더 가져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보아스에게 룻에게 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룻은 당신의 시녀와 같지 못한다고 하며 나에게 잘해주시니 감사하다하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감당하기 어려운데 당신의 은혜 받는 것에 벅찰 뿐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14절에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을 봅니다.


(룻 2: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작지만 마침내 큰일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는 자들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있는데 작지만 마침내 큰 일을 이루어가신다는 것입니다. 시녀와 같이 여겨달라고 했더니 보아스가 한 말은 내 곁에 와서 떡을 먹자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주인과 시녀가 같이 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인이 먹는 초장에 같이 먹자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누린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룻 2:15) 롯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곡식 단 사이면 얼마나 곡식이 많이 있겠습니까? 이전에는 다 추수하고 난 다음의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곡식 단 사이에서 추수를 하는 것입니다. 룻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선물을 보게 됩니다. 세 번째 선물은 16절 보면


(룻 2:16)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이제는 뽑아서 나두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17절보면


(룻 2: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오늘날로 하면 22리터 정도 된다고 합니다. 결국은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룻은 어떠한 상황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인지 모릅니다. 자신은 시녀와 같이 여겨달라고 한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시녀와 같이 낮아진 그녀를 높이신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은 주 앞에서 낮아지면 주께서 높이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인데, 룻은 점점 작아진 자였습니다. 시녀와 같이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낮아진 룻을 일으켜 세워 보아스의 아내가 되게 합니다.


룻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그 일을 했지만, 하나님은 룻을 통하여 믿음의 열매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룻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에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정직한 모습이라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대하였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담대하게 그 일을 대하였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룻이 이방인인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가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어떻게 사용하시는 지를 보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낮아지니 하나님께서 천천히 높여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모습으로 나의 죄성과 연약한 모습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행하는 일에 있어서 담대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믿음의 길에 있어서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철저하게 낮아지는 사람입니다. 낮아질 때 하나님이 높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여가고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높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렇게 일하시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낮아질 때 우리가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합니다. 내가 남들한테 겸손할 때 짓밟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은 높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낮아진 룻을 높여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이 믿음의 길을 잘 기억하면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신다는 여정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여정을 상황 때문에 포기하면 안 됩니다. 서로가 낮아지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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