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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비전트립/조윤빈 운영자 201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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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비전트립

조윤빈 자매 (청년라브리)

 

이번 캄보디아 비전트립은 올 한 해를 엶에 있어 너무나 좋은 시작이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기에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막상 캄보디아에서의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항공편 문제로 국내선을 타고 프놈펜부터 시엠립까지 왕복해야 하고 숙소도 자주 바뀌어 정신이 없었을 텐데도 각자 본인들과 서로서로를 잘 챙기고 목사님과 선교사님의 인도를 잘 따라 큰 문제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5박 6일의 일정 동안 여러 곳을 둘러보고 여러 경험을 했지만, 이 글에서는 특별히 인상 깊었던 일들만 이야기하려 한다.

비전트립 둘째 날이었던 17일에 우리는 시엠립에 위치한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앙코르와트에서 캄보디아의 고대사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짧은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본 상태였고 현지인 가이드 분이 한국어로 설명해 주셔서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처음 들어갔을 때에는 기대했던 것에 비해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무너진 사원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눈으로 보니 훨씬 삭막해 보였기 때문이다. 건축 당시에는 무척이나 화려했다는 건물들이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 갈색과 회색밖에 보이지 않았고,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건물에 새겨진 조각 정도였다. 하지만 무너진 돌무더기들 사이를 걷다 보니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원래 이곳에 존재했을 아름다움을 앗아간 전쟁의 참혹함이 더 눈에 보였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전쟁의 가능성이 자주 이야기되어서인지 남일 같아 보이지가 않고 언제 나의 삶이 터전도 이렇게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앙코르와트 사원의 벽에는 부조로 조각된 전쟁 장면이나 무희들의 모습이 많이 있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설명을 듣고 조각을 감상했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중간에 조각들에서 볼 수 있는 불교나 힌두교의 전쟁선호와 여성을 희생 제물로 여겼다는 이야기 등을 해 주셔서 의미 없어 보이던 조각들이 새롭게 보였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큰 의미를 지닌 것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다음날인 18일에는 킬링필드와 뚜얼 슬랭(S-21)을 방문하여 캄보디아의 현대사를 보았는데, 나는 이 두 곳이 가장 인상 깊었다. 킬링필드는 1975년부터 약 4년간 폴 포트가 이끌던 크메르 루즈가 정권을 잡던 시절, 폴 포트에 의해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이 대량 학살된 장소이다. 이는 전국에 수십 개가 퍼져 있으며 수도 프놈펜에 있는 것이 가장 크고 유명하다. 뚜얼 슬랭은 킬링필드 근처에 있는 집단 수용소로 원래 학교건물이었던 것을 개조한 곳이다. 안내책자에 따르면 1만 2천명에서 2만명의 사람들이 수감되었지만 생존자는 12명뿐이라고 한다.

우리는 먼저 프놈펜의 킬링필드를 보고 그 다음에 뚜얼 슬랭을 방문했다. 두 곳 모두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었기에 집중해서 돌아볼 수 있었다.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고 정도가 심해서 공개하기 힘든 것은 사진이나 그림으로나마 보여주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지나치게 사실적이라서 마치 크메르 루즈 시대로 돌아간 듯 한 기분이었다.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하여 정신이 멍해지는 그곳에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어떻게 고작 한 인간의 욕심이 이렇게나 큰 결과를 낳을 수 있는가, 였다. 폴 포트는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나와, 킬링필드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과,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과 큰 차이가 없는, 하나님께서 지어낸 피조물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어떻게 캄보디아라는 한 나라를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 있었을까? 나는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 의함이라고 생각한다. 폴 포트 혼자만으로는 절대 그런 대규모의 학살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이 한 번이라도 자신들과 윗사람들이 하는 일에 의구심을 품고 뭉쳐 저항했더라면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의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만약 이들이 그리스도인이었다면?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그를 신처럼 떠받들고 그의 명령에 의해 사람들을 죽여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들은 결국 역사에 남을 추악한 일의 주체가 되어버렸다. 하나님을 아는 것의 의미와, 하나님을 전하는 것의 중요성을 무겁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번 비전 트립에서 우리들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준비해온 현지 교회 사역이 이루어진 것은 19일 금요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선교사님께서 사역하시는 번띠미어 교회로 출발했다. 교회에 도착했을 때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아이들이 늘어가고 학교 운동장 같은 모습이 되어갔다. 아이들의 첫인상은 무척 크고 맑은 눈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똘망똘망한 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처음에는 수줍어하면서 도망가다가도 계속 다가가니 마음을 열어주는 게 예쁘고 고마웠다. 선교사님께 배운 간단한 인사말을 알아듣고 대답해 줄 때는 너무 기뻤다. 불교가 지배하는 캄보디아의 시골에 이렇게 멋진 교회가 세워져 있고, 완전히 믿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아이들, 어른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 땅에서 교회가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경이롭기도 하였다. 사실 우리가 번띠미어 교회에서 행한 일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잘 모르겠다. 잘 진행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생각보다 빨리 끝나버린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지역 아이들이 한 번이라도 더 교회를 방문하고 교회에서의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데에 기여했다면 우리가 고민하고 준비한 것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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