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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주의에 사로잡힌 교회 이종인 목사(울산 언약교회) 김주호 200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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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24)

성장주의에 사로 잡힌 교회

이종인 목사[울산 언약교회]

오늘날 성장주의라는 사상은 온 나라와 세계의 뼈속깊이 베여들어있다. 나라는 성장해야하고 국가는 발전해야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이너스 성장이나 발전되지 않는 모습을 참아보지를 못한다. 세계 자본주의의 사상에 동조되어 한국사회도 무섭도록 성장신화를 이룩하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다. 경제나 국력이나 지식과 첨단과학에서 날마다 성장해야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성장이 없이는 마치 죽을 것처럼 호듭갑을 떨게하는 오늘의 모습은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다.

성장주의는 단지 오늘날 우리를 휘감고 도는 또다른 사상이며,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우리시대 사람들의 대다수의 논리인 까닭이지, 그것이 꼭 옳은 것만은 아니다. 성장주의에 있어서 기다림과 인내는 더 이상의 미덕이 아니다. 더 빠르고 신속함과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삼는다. 자기 PR 시대에 성경에서 말하는 탁월한 성품인 '겸손'이 더 이상 미덕이 되지 않듯이 참고 기다림은 견디지 못할 나쁜 것일 뿐이다. 거대자본의 시장 독점의 폐단으로 수많은 나라에 기근이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성장이 미덕인 까닭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더 이상 선한 사마리아인의 교훈은 통용되지 않는 셈이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도 성장주의로 옷입은 투사가 되어 치열한 시장경제의 전투에서 살아남으려 기쓰는 기업마냥, 온갖 물량주의와 성장주의의 무기들로 채비하여 시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냉엄한 진검승부들이 벌어지고 그리 오래지 않는 시간에 성장하는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의 희비가 엇갈린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곳에 재래시장이 쓸쓸함으로 텅 비어 가는 것처럼, 대형교회가 생긴 장소에는 작은 교회들은 소리없이 사라져간다. 성공한 교회의 목회자와 실패한(?) 다수의 목회자들간의 격차는 너무도 커 보인다. 교회의 외형이 성장하면 성공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인 것으로 치부된다. 성장이 미덕이 되고 교리가 된 까닭에 진리의 외침과 바른 음성들도 성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소유로써 이 땅에서 생존해야 한다. 사람들의 다수의 모임이 교회됨을 결정 짖거나 좌우하지 못한다. 주의 통치와 바른 말씀이 없는 교회는 교회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교회는 성장주의에 포로가 되는가? 교회가 그리스도만을 머리로 삼지 않는 까닭이 그 이유일 것이다. 주의 말씀의 통치와 다스림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때문일게다. 주를 향하여 눈을 들지 아니하고 다수와 권력과 사람들을 향하는 까닭이다. 한 아이가 자라서 성장하려면 수많은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걷지 못하는 아이가 걷고, 일어나 뛰고, 말하고 배워가며 부모를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면서 자라는 과정에는 수많은 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물며 다양한 방식의 삶을 걸머쥐고 가담하는 교회가 성장하고 자라감에 있어서는 얼마나 더 큰 인내가 필요하겠는가.

조급하다. 기다리지 못한다. 성장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에게는 인내란 찾기 힘들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하여 얼마나 인내하셨는가? 당신의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도대체 얼마나 참으셨던가.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이 없다면 오늘날 교회가 바르게 서 가는 것이 어찌 가능할까? 적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들은 인내해야 한다. 큰 대형교회의 성장주의를 좇아가는 것은 미신을 좇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세상의 정신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서야 어찌 복음을 그리 값싸게 팔고 숫자에만 욕심을 낼수 있는가. 복음에는 성장주의가 없다. 말씀에 따라 자라감과 성숙이 있지만, 성장주의는 없다. 종말론적인 삶을 경주하며 그리스도를 향하는 신실한 교회됨을 촉구하는 가르침으로 가득하다.

성장주의에 물든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내이다. 세상의 싸늘한 시선만이 아니라 가까운 이들의 비난에도 견디어내는 마음의 체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아픔과 슬픔에도 신실한 언약에 의지하여 주를 향한 소망을 잃지 아니한 종말론적인 삶과 인내가 요구된다. 아이의 자라남을 오랜기간 기쁨으로 기다림과 같이 소망 가운데 교회의 성숙과 자라감을 주께 의지하며 인내하고 희망하자. 주를 향한 소망 가운데 인내하는 것이야 말로 성장주의의 맹독을 치료하는 가장 효과적인 해독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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