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7년 첫 주일 그리고 2014년 쉰 한 번째 주일/박석화 | 신동식 | 2014-12-22 | |||
|
|||||
|
2007년 첫 주일 그리고 2014년 쉰 한 번째 주일 박석화 목사 2007년 첫 주일에 빛과 소금 교회에서는 누군가가 떠났고 누군가가 왔습니다. 빛과 소금 교회에 예배당에 들어온 누군가가 바로 저입니다. 예배당으로 들어왔을 때, 나이가 지긋하신 분과 젊은 분 몇몇 분들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가 시작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저는 이십대 후반의 나이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 쉰 한 번째 주일인 지금 저의 나이는 삼십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이제 이십대 후반부터 삼십대 중반까지는 빛과 소금 교회를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게 되었네요. 그리고 앞으로 저에게 삼십대 중반부터의 또 다른 이야기 거리가 생기겠지요. 지난날을 잠시 뒤돌아보았습니다. 목회자 후보생으로 교회에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입학 공부 한 첫 해, 그리고 그 다음 해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신학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첫 해는 교회학교 교사로, 그 다음해는 간사로 있었지요. 그리고 대학원 2년째가 되던 해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전도사라는 말을 교회에서 저는 처음으로 듣게 되었지요. 그 말에 적응하는 데 꽤 오래 걸렸습니다. 왠지 모르게 쑥스럽고 익숙해지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늘 불러보고 어려워했던 전도사님이라는 호칭에 나에게도 불리는 것이 많이 낯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신대원에 입학하고 세 번째의 해를 보내나서 저는 신대원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졸업한 그 해 강도사라는 또 다른 호칭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강도권을 가진 사람. 말씀을 맡은 자라는 사실이 마음 한 구석에 큰 부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다음해 목사라는 직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말씀을 맡을 뿐 아니라 목회를 하는 사람이라는 책임이 어깨를 무겁게 하였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2년이 지난 지금 저는 또 한 걸음을 내딛고자 서 있습니다. 지난 빛과 소금 교회에서 저는 목회 후보생으로 목사가 되기까지 자라났습니다. 칼빈이 교회는 신자의 어머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저의 신앙에서도 그대로 고백되어집니다. 신자로서 그리고 목사후보생인 저는 많은 인내와 사랑과 권면을 받으며 빛과 소금 교회에서 자라났습니다. 처음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섰을 때가 생각납니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준비했던 원고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제가 전하는 말이 마치 중구난방이라는 말처럼 어디로 흘러가는지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나 설교는 마쳤지만 이러한 설교를 하게 되어서 죄송한 마음과 그 설교를 들어주어서 감사하였습니다. 이렇게 인내하며 들어주어주시고 때로는 사랑의 마음을 담아 권면을 해주었기에 오늘에 저가 있게 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빛과 소금 교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저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바로 중고등부 친구들입니다. 오랫동안 친구와 같이 함께 지내온 우리 중고등부 친구들이 귀합니다. 많이 알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저를 목사로 대하여 주고, 때로는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마음 편히 형이나 오빠, 혹은 동네 아저씨로 대하면서 같이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말 그대로 저의 좋은 친구였습니다. 2007년 1주에서 2014년 51주까지 빛과 소금 교회에서 있었던 저의 작은 발자욱입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