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섬 제주 | 신동식 | 2015-08-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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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 안은경 성도[청라공동체] 제주에 왔다, 평화의 섬 제주. 올 해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난 이중섭 화가의 미술관이 올 여름 제주로 날 오게 했지만 언제나 내 버킷 리스트에 있는 곳. 물론 혼자인 여행이어야 했다. 여느때보다 빠르게 지나쳐온 2015년의 하반기를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내면의 힘을 얻을 나만의 시간. 삶으로 만나고 싶었던 아이들이었지만 동행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떠나기 직전까지 얼마나 후회했던가. 안전과 동선 등 신경써야 할 일이 많아서.. 그런데 4.3 기념관에 와서 아이들이 질문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적는 모습을 보며 아 이번 제주 여행에서의 동행의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가슴 벅차고 행복했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고 싶은 건 나는 이웃의 고통에 민감한 자로 살고 싶다고.. 우리 그렇게 살자고 이기에. 이 기념관은 지어진 지 10년도 되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너무 잘 지어져 있다. 영어로 모두 다 번역해 놓은 것과 4.3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4.3을 넘어 세계의 제노사이드를 기억하게 할 뿐 아니라, 진실과 화해를 통해 제주와 전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구성이 훌륭했다. 건축물 또한 의미 있다. 제주 동쪽, 오름으로 둘러싸인 초록빛 넓고 푸르른 곳에 4.3을 오롯이 안고 품겠다는 그릇 모양의 기념관. 그 주변에 기념비와 예술 작품들과 위령비, 위패전 이 세워져 있다. 독일의 훌륭한 박물관과 견줄 만한 곳. 다른 사건이 아닌 4.3을 기념하는 곳이 이런 곳이라 방문하고 떠나는 마음이 위로가 됐다. 이 일을 추진한 그 당시 정부와 제주도민들에게 고마웠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설마 했는데 눈에 익은 것이 보였다. 베를린 장벽이었다. 보는 내내 독일의 내가 사랑했던 전시회들이 눈에 아른 거렸는데, 지금 , 이곳에서 2007년에 기념관 완공 기념으로 독일이 선물한 장벽 앞에 섰던 것이다. 기념관은 왜 4.3 학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지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었던 제주의 역사문화적인 배경과 4.3의 시간동안 고통 가운데 몸과 영혼이 죽어간, 그 이후 50년 동안 말할 수 없어서, 들어주지 않아서, 기억해 주지 않아 회복되지 않은 제주 사람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진정한 회복은 진실의 회복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신시켜 주었다. 권력은 개인과 공동체의 생명과 삶을 지키고 돌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며 모든 폭력을 미워하며.. 샬롬을 꿈꾼다.
2015년 8월 12일 블로그의 글 ---------------------------------------------------------------------------- [각주] 올 해 1월 저는 베를린에 다녀왔습니다. ‘베를린의 무너진 장벽을 보고싶다.’ 라는 마음이 여행의 동기였습니다. 근교의, 차로 2시간 걸리는 드레스덴이라는 곳을 다녀온 것 외에는 오롯이 베를린에만 열흘 정도 머물렀습니다. 장벽이 여행의 계기가 되었지만 베를린에서 유대인 추모 공원, 작센하우젠 수용소, 본회퍼가 나치에게 붙잡힌 그의 부모님의 집, 달렘교회(나치에 동조하는 독일 기성교회에 대항하여 독립교회가 결성된 곳), 오토박물관(1943년까지 유대인을 도왔던 독일 사업가의 공장), 독일인저항기념관(나치에 저항했던 이들을 기리는 곳) 등을 방문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어두웠던 과거역사를 중심으로 돌아보는 여행을 일컫는 말이 있습니다. ‘Dark Tourism’. 평화와 역사를 좋아하는 저의 취향에 맞는 여행이었고, 앞으로의 여행은 Dark Tourism으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다음 여행지는 제주였습니다. 광주, 밀양, 진도 등이 아닌 제주로 향한 건 그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난 화가, 이중섭이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미술관이 제주에 있었고, 여행은 4.3 관련 유적지를 중심으로 돌아보고, 강정마을을 찍고 오는 평화여행으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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