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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식 목사의 구속사적 성경연구(212) - 사사기[26] 박석화 201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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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성경 연구 (사사기17:1-13)

 

 

사사기 17장(2)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사사기 17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지난번에는 종교화된 신앙의 불행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계시적 신앙이 아니라 기복적 신앙으로 흘러갑니다. 계시적 신앙이 아니라 기복적 신앙이 되면, 하나님 말씀이 삶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나에게 만족이 되고 유익이 되는 기복적 신앙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미가와 미가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복으로 귀결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미가 잃어버린 돈을 찾았을 때도 미가에게 네가 복 받기를 원한다고 하였고, 아들 미가가 레위인의 소년을 자신의 제사장을 삼았을 때도 복 주실 것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철저하게 물질주의에 지배당하고 있는 신앙인 것을 보게 됩니다.

종교화된 신앙의 다른 모습은 하나님을 개인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가는 자신을 위하여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오늘날에는 목사를 자신의 소원하는 대로 이끌어가려는 모습이 제상을 자신의 종으로 삼는 모습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소비자 중심의 목회는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필요한 것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을 살펴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순서가 바뀌면 계시적 신앙이 아니라 종교적 신앙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결코 이러한 모습들을 추구해서도 안 되고, 원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목사에게 원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증거 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증거 된다는 것은 내 마음에 찔리고, 힘들게 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바르게 증거 해주시라고 소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철저하게 목사를 개인을 위한 제사장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우상 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목사에게 바라는 것은 내 마음에 드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증거 해주신 말씀만 증거 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은 가감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 교회를 다녀야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가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 된다는 것이고. 거룩한 성찬이 바른 이해 가운데 시행됩니다. 이것은 작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교회라고 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고백이 없다고 한다면 오히려 우리는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혜택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혜택을 누릴 수 없다고 할지라도 복음을 들을 수 있다면 다른 것을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상쇄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바른 말씀이 선포되도록 기도하고 요구해야 합니다. 큰 교회는 목사를 만나지 못하고, 작은 교회니 목사를 개인 제사장으로 삼겠다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목사는 성도를 심방하는 것이 마땅하나, 성도는 목사를 개인 제사장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목사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신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목사도 살고, 성도도 살고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 모습을 실수 하는 것은 미가의 모습니다.

 

종교화된 신앙의 세 번째 모습은 혼합주의입니다.

 

(삿 17:5) 이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종교화된 신앙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계시를 따라 사는 모습이 아니라 기복적이고 물질적이고 자기중심적 신앙이기에 반드시 혼합주의적 신앙의 모습이 동반되어 나타납니다. 혼합주의 신앙은 종교화된 신앙의 분명한 모습입니다. 미가는 자기 신당이 있었는데, 에봇과 드라빔을 만듭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이란 성도들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아뢰고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올리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드라빔을 만듭니다. 드라빔은 가정 수호신입니다. 우상 숭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믿지 않는 사람은 부적이나, 마른 동태를 엮어서 놓기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점보려 다니는 것입니다. 얼마 전의 통계에는 한국 교회의 20%는 점 보러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너무 종교화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의 경험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에 대한 고백과 순종보다는 자신이 고백하는 것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옳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의 상당수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드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스운 모습입니까? 종교화 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종교화되면 누구나 혼합주의적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미가의 집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계시적 신앙이 되지 않으면, 종교화된 신앙으로 떨어지고 종교화된 신앙에는 기복적 신앙으로 가게 됩니다. 계시적 신앙에서 돌아가지 않으면 참된 신앙에 대해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교화된 신앙 가운데 머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확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종교화된 신앙은 화석화된 신앙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미가의 집안에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본문에서 볼 수 있는 큰 두 번째는 영적 지도자가 타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타락한 미가의 집안이 불행은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 것은 영적 지도자의 타락 때문이었습니다. 영적 지도자가 잘못에 대해서 지적을 하지 않고 호구지책으로 살다보니 헤어날 수 없는 구덩이라고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세상을 향하여 바른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대와 연합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들도 물질의 노예가 되어 소명을 망각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삿 17: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리라 하므로 레위인이 들어갔더니

(삿 17:11)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 이는 그 소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삿 17:12)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소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거한지라

 

여기서 보게 되면 소년의 모습을 통하여 거짓 선지자가 어떤 모습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소년이라고 하는 표현은 성숙하지 못한 지도자를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성숙하지 못한 제사장과 지도자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오늘 보는 것과 같이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에 다 팝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통하여 보여주는 것으로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들에게 볼 수 있는 첫째는 소명의식이 무디어 진 것입니다. 소명의식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으로 선택한 이유와 소명을 이 소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명을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에 다 팔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도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물질적으로 빠져들어 물질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지도자, 설교자, 목회자들은 물질적인 풍요에 안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질의 안주함에 따라서 살아갑니다. 제가 총신대학교 개강예배를 다 듣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원보에 있는 내용을 보았더니 설교하신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이러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목회자는 자신을 내려놓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내려놓고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기를 ‘너무 검소하게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취재하는 기자가 인상이 깊었는지 그 구절을 적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는 해서는 안 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일용한 양식으로 만족하며 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너무 검소하게 살려고 하지 말라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언입니다. 설교 전체를 못 들어서 어떤 내용인지 모르지만, 그 한 문장만으로 보면 위험한 말이며, 썩 좋은 문장은 아닙니다. 우리는 검소하게 살려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본질적으로 조금 더 편하게 살고 싶고, 사람들의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하는 데로 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엉망이 될 것입니다.

튤립 컨퍼런스에 참석한 청년의 교회에서 목사의 사례비를 책정함에 있어서 평균 월급으로 책정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책정하기를 교회 성도 평균 월급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그 성도들의 평균이 500만원이기에 사례비를 500만원으로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검소하게 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우리 부패한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욕망을 제재해야 합니다. 제재해야 물질주의에 사로잡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놓아버리면 고삐 풀린 말처럼 사는 것입니다. 너무 검소하지 말라는 것은 어떻게 살라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까요? 너무 검소하지 말라는 것은 적당히 검소 하라는 것인데, 너무 검소하지 말라는 것은 중산층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교회의 성도가 대기업의 회장들이라고 하면, 목사의 사례비는 엄청날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성숙하지 못하게 되고, 영적으로 잘 훈련되지 못하게 되면, 영적으로 아이와 같으면, 지도자들을 물질적 풍요와 만족에 안주하고 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은 열 벌과 옷 한 벌과 식물까지 주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사람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삿 17:13)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이 제사장이 내 제사장이 되었다는 말씀은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숙하지 못하고 타락한 지도자들에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시대를 순응하는 자가 됩니다. 미가에게 천둥 번개와 같은 말씀을 전해서 바른 길로 가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한 목사님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레스왕과 같은 자가 되라고 설교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스라엘과 같이 속국이 아닌데, 도대체 비교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냥 정직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면 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고레스 왕과 같이 되면, 우리는 다시 이스라엘이 되어야 합니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았을 때 분별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세습을 안 시키고 개척시켰습니다.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1800평에 교회를 지어놓고 그쪽의 교구 사람을 보내고 개척이라고 하였습니다. 1300명이 한 교회가 개척하였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까? 성도들이 어디로 가야갈이지 모르는 것입니다. 비판한 것이 아니라 속상합니다. 마치 미가가 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미가가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는 바른 분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사기 17장을 통하여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종교화된 신앙에 빠져 있고, 지도자들을 타락하였고, 철저하게 신앙이 무너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일에 쓰이라고 우리를 부르셨는데, 우리가 영광을 짓밟고 그리스도의 몸을 찢고 있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내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 지 살펴야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부끄럽지 않은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앙은 자기 소견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계시적 신앙과 고백적 신앙이 우리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자기 소견대로 믿으니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고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우위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가라면 가고, 멈추라면 멈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소견대로 신앙 생활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믿음의 고백을 남겨주시고 설교자들을 보내주셨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계시적 신앙이 우리를 움직여 가야 합니다. 그래야 어두운 시대 가운데 길을 잃지 않고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택함 받은 사람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내 모습 가운데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두 번째는 거룩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날마다 삼위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가지고 있어야 물질주의와 혼합주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고 하나님께로 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갑니다. 하나니은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날마다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 맞서서 승리하며 걸어갈 수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믿음 없이 걸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묵상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계신의 말씀을 늘 돌아가는 것입니다. 강조하는 것이지만, 말씀 읽지 않고, 예배에 즐거워하지 않고 뒤통수 맞고 한탄하면 안 됩니다. 열심히 살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루 세끼 밥 안 먹으면 미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읽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습니다. 이는 말씀을 읽지 않는다면 몸은 찌지만 영은 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은 못 느끼는데, 곁에 있는 사람은 압니다. 영적으로 나나타나는 모습이 같습니다. 근심 걱정이 쌓입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모든 것이 말부터 달라집니다. 얼굴도 달라집니다. 웃음도 사라집니다. 의심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말라가고 있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없이는 영적인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의 소리를 듣고 나아갈 때 회복됩니다. 자기 소견대로 사는 이 세상 가운데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때 살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영적인 지도자 목사를 개인 제사장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목사를 개인 제사장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목사를 통하여 듣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개인의 귀를 간지럽게 하는 자가 목사가 아닙니다. 자신의 귀가 간지러우면 웃습니다. 송곳을 찌르면 웃겠습니까? 사람들은 귀를 간지럽게 하는 소리에 마음이 갑니다. 영적으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목사를 통하여 기도하고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증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나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고난 가운데 가게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왜 나에게 이런 설교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축복의 자리입니다. 자신에게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 나에게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할 때, 깨닫고 회개하면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왜 그러지? 그리고 설교 끝나고 나서 나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그러면 목사가 자기 검열하겠지요. 그러면 목사도 삯꾼이 되고, 성도도 망하는 것입니다. 패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를 삯꾼 만들면 안 됩니다. 종교화된 신앙에서 자기가 옳은 대로 살아가는 세상 가운데서 영적인 불행을 막는 길입니다. 기억하시고 미가의 모습을 통하여 나의 모습을 잘 살펴보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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